나이 탓인가. 아직은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할 나이는 아닌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자꾸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수행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산다고 체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알 것도 같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것 하나를 알려고 출가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던가.
삶을 알고 죽음을 안다고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도를 아는 것이며 진리를 아는 일일 터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고 죽는 것이다. 옛날 어떤 임금이 학자들을 모아서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연구하여 오라고 했다. 학자들은 온갖 학문 자료를 동원하여 수십 권에 이르는 책을 만들어 왔다. 임금은 그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인생을 알 수가 없었다. 임금은 학자들에게 다시 쉽고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해서 갖고 오라고 했다. 결국 몇 번이나 퇴짜를 맞고 나서 학자들은 겨우 “인생은 나고 죽는 것이다’라는 결론 하나를 얻어 임금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리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것이며 가장 공평한 것이다. 이 사실은 하나의 고통이기도 하고 또 위안이기도 하다. 만일 어떤 사람은 죽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하면, 이 같은 불공평이 어디 있을 것이며 이보다 더한 절망과 고통 또 어디 있겠는가.
이성으로는 죽는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막상 죽음을 눈앞에서 대하면 감정이 앞서고 만다. 왜 죽어야 하는가. 왜, 왜… 공자님은 일찍이 “삶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요’ 하였다. 죽음을 알고자 하는 자는 먼저 삶부터 알라는 뜻일 것이다. 살아있는 자가 삶을 알면 바로 죽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에게도 가장 오랫동안 끊어지지 않는 애착은 삶에 대한 애착이다. 누구나 죽음을 알지 못할 뿐아니라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모든 애착은 바로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죽음을 알아버린 사람, 삶을 알아버린 사람은 삶에 대한 애착이 끊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삶과 죽음은 서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生死一如). 삶과 죽음은 서쪽으로 해가 기울면 동쪽에서 달이 뜨는 것과 같다(日落西山月出東)는 게송도 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죽음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를 생사를 초월했다고 해야 하는 것 일는지…
지난 설날 평소에 가장 존경하는 스님의 장례를 치루었다. 입춘을 며칠 앞두고 있는 날씨지만 살갗을 파고 드는 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섣달 그믐날 오후에 불국사 강백인 종광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침 열 한시 쯤에 정영스님이 열반하셨다는 것이다. 이어서 불국사 승가대학 학인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고도 몇 사람에게서 계속해서 전화를 받았다. 만사를 제쳐 놓고 불국사에 내려가야 했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섣달 그음 날에 파주 보광사에서 경주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길도 막히고, 차표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야만 했다. 설날 아침에 절에서 간단하게 볼 일을 보고 오후에 보광사 스님 한 분과 조계사 앞에서 불교 용품을 팔고 있는 대복전 보살님, 이렇게 셋이서 무려 열두 시간이나 걸려서 경주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 이튿날 불국사 정혜료 마당에서 간단하게 영결식을 하고 다비를 한 뒤에 재는 선원 뒷산에 뿌렸다. 세수 일흔, 출가수행자로 서른 다섯 해를 살아온 정영스님의 인생은 마무리되었다. 한평생 몸이 허약해서 병 고생을 한 탓에 살점 하나 없이 깡마른 스님의 육신은 한줌 재가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하필이면 그믐날에 열반을 하여 사중 소임자 스님들이 여러 가지 불편을 겪었으리라. 그저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서, 모두가 존경하지만, 스님이 가신 것을 서운해 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영결식에도 사중 스님들과, 문도로는 법종 사형님과 나, 그리고 신도로는 대복전 보살님이 참석했을 뿐이다. 절이 크니까 대중 스님들이 많아서 별로 쓸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특히 조실 스님과 주지 스님의 특별한 배려와 선원 스님들과 학인 스님들이 수고해 준 덕택으로 정례를 잘 치루었다. 거듭 고마운 마음이다. 의례적인 격식에 서투르고 인사치레에 어두워 사중스님들께 두루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또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끝까지 일을 잘 돌봐준 종광스님에게는 더더욱 고마운 마음이다.
이렇게 나는 사형 한 분을 보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짐을 하나 던 셈이다. 늘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밑에 시봉하는 상좌 하나 없이 지내는 스님이라 나라도 시봉노릇을 해야 했는데, 나 역시 변변치 못해 내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이고 보니, 마음만 앞서고 한번도 스님을 마음처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스님의 이번 열반은 다시 한번 수행자로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야말로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일생을 맑고 깨끗하게, 한점 허물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수행자의 길만을 외롭게 걸어온 스님이다. 삶이 그랬듯이 열반할 때도 아주 조용히 그러면서도 더할 수 없이 깨끗하게 생을 마무리하였다.
중광스님이 들려 준 스님의 마지막 모습은 철저한 수행자의 모습 그것이었다. 본디 허약한 몸인데 입적 며칠 전부터 감기를 조금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기서 치료를 받고 며칠 입원을 하였다. 종광스님한테는 여러 가지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미 열반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원에서 위장을 세척하는 관장을 하고 링게르를 맞고 있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스스로 주사바늘을 뽑고 혼자서 몰래 정혜료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종광스님이 왜 며칠 더 병원에 계시지 않고 오셨느냐고 하니까 이제 병이 다 나았다고 하시더란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그러니까 음력 섣달 그믐날 오전 열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당신이 오랫동안 거처하던 정혜료 방에서 열반에 드신 것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서 지난 가을 대복전 보실이 불국사로 내려가 뵐 때 전에 짜 드린 스웨터를 도로 돌려주면서 이제 스웨터를 입을 일이 없으니 가져가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더란다. 수행자가 죽고 난 뒤에 짐이 많고 특히 옷가지 같은 것이 많아서 불에 태우고 하면 별로 보기에 좋지 않다는 말씀과 함께 스님의 방은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고, 이미 짐도 말끔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다만 삼백만 원이 든 저금통장이 하나 나왔는데 부족하지만 장례 비용에 보태라는 뜻으로 통장비밀번호를 적어 두었다. 통장을 본 주지 스님께서는 “스님이 열반하면 으레 사중에서 다비를 하는 것이지…”하였다. 스님이 공연한 신경을 쓰셨다는 뜻이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번은 죽게 되어 있다. 인생이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그 동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길어야 백 년 미만의 세월을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출가 사문은 수행자로서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한 점 구름처럼… 아, 나도 정영스님처럼 살아서는 그 삶을 투명하고 맑게 하고, 죽음에 임해서는 생에 대한 애착을 미련없이 끊는 그런 수행자가 되어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