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마음에 깨끗하니
곳곳에 연꽃이 피어있더라.
꽃 한 송이에 한 정토요
한 정토에 한 부처님이라.
一念心淸淨
處處蓮花開
一花一爭土
一土一如來
한없이 너른 이 땅에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있고 곳곳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없거늘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성철 큰스님은,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연꽃이 활짝 핀 것이 아니라 마음이 비로소 열림으로써 이미 피어 있는 연꽃을 본다고 말씀하셨다. 해탈하고 성불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해인가족 모임 중에 틈을 내어 사찰내의 크고 작은 글씨를 사진에 담고 주변 암자, 특히 성철 큰스님이 지내시던 백련암과 금강굴 등을 다니며 가야산의 정취를 한껏 누렸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제1문인 일주문은 간결하면서 소박한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일주문 정면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 현판이 산문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주고 있는데, 근대 서예의 대가인 해강 김규진(海間 金圭鎭, 1868~1933)이 글씨를 썼다. 해서체로 쓴 이 글씨는 양쪽으로 높이 치솟은 아름드리 노송들과 어우러져 초입에서부터 가야산 해인사의 기상을 가늠하게 한다.
해인사 큰 법당인 대적광전 한 건물에 현액이 사방 네 곳에 걸린 것이 특이했다. 대적광전 서쪽 벽의 ‘법보단法寶壇’
은 행서, 반대편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초서, 북쪽벽의 ‘대방광전大方廣殿’은 예서체로 저마다 달리 쓴 이 글씨들도 일주문의 현판을 쓴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다. 한 건물에서 이렇게 서체를 서로 달리한 데에서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와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일주문에서 삼백 척 떨어진 곳에 천왕문이라고도 하는 봉황문이 있다. 정면에 큰 글씨로 해인총림海印叢林 이라고 쓴 현판이 나온다. 진주의 유당 정현복鄭鉉輻의 글씨이다. 그의 아들 정도준鄭道準도 국전 서예부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서울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다. 문 안쪽에는 ‘봉황문鳳凰門’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그 글씨는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해인사 사중 현판 글씨 가운데 가장 잘 썼다고 할만큼 뛰어난 명필이다.
봉황문에서 벼랑처럼 서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해탈문에 이른다. ‘불이문’ 이라고 하는 해탈문은 정면에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라는 현판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해인대도량海印大道場’이라는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행서 현판이 걸려 있다.
지금 해인사 도서관 건물로 쓰이는 경학원의 현판 글씨도 뛰어나다. ‘경학원經學院’ 현판은 해방 무렵에 해인사 주지를 지냈으며 명필로 소문난 환경당幻鏡堂의 글씨(1946년작)로서 활달한 필치가 돋보인다. 다만 출입이 금지되어 쉽게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한때 성철 큰스님이 계셨고 지금은 혜암 방장스님이 주석하시는 ‘퇴설당堆雪堂’은 본디 선원이었다. 그 현판과 주련 글씨는 모두 행서채로서 단아하면서도 향기롭다.
봄 가을로 아름다운 경치 많으면
의리 풍성한 해 된다오….
고요히 앉아 연못 고기 달밤에 경 읽는 소리듣고
웃음으로 새가 하늘과 담화함을 보노라.
구름 속에서 누에치기 기다릴 수 없으니
선방에서 차라리 씨나 뿌릴까.
春秋多佳日
義理寫豊年
靜聽魚讀月
笑對鳥談天
雲在不待蠶
禪室寗須稼
‘명부전冥府殿’, 또 장경각의 ‘법보전法寶殿’,‘수다라장修多羅藏’은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1881~ 1884)가 쓴 현판으로 글씨의 백미로 꼽는 상품이다. 신관호는 안목이 엄정한 추사가 그를 수제자로 인가하여 의발을 전수했다는 명필이다.
수다라장 좌우 기둥에 걸린 대련 글씨 또한 위당의 글씨로서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표구되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