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만행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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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법연
1995년 03월 157호
해제를 한 터인지 조계사나 인사동에서 또 거리 여기저기에서 스님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안거와는 무관한 소임을 맡아 지내고 있지만 해인사의 그늘에서 사는 처지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해제와 결제를 챙기는 버릇이 배었지 싶게 해제와 결제에 민감하다. 해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만나는 스님들마다 차려 입은 입성과 얼굴이 안거 때 살림살이의 알뜰함만큼 깨끗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다.
선방에서 첫 안거를 끝낸 해제 날 아침, 풀 먹여 빳빳이 다림질한 광목 옷을 떨쳐 입고 신문 밖을 나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던지. 북통만한 걸망을 멘 사람의 걸음답지 않아서인지 “어디를 그렇게 부산나게 가노” 하는 구참 스님네의 말 참견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버스 주차장까지 내려오던 동안의 그 기쁨이란. 이른 봄이지만 계곡의 물은 조금씩 봄을 풀듯 소리가 또렷해지고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도 살갑게 느껴지고 설핏 들리는 새소리 또한 맑기만 하던 터라. 두두물물이 부처 아님이 없음을 실감했다. 굳이 오라는 데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건만 그렇게 바쁘게 서두르던 발걸음은, 며칠 되지 않아 절 집 객실의 냉랭함과 갈 곳 없는 막막함으로 이내 풀이 죽어, 어깨에 멘 걸망의 무게와 더불어 떠났던 산문을 다시 들어서고야 말았지만 말이다.
갈 곳이 많은 것도, 융숭한 객 대접도 중노릇 한 세월과 비례함을 짐작도 못하던, 삭도 물도 채 마르지 않은 신참내기의 몇 발자국이었지 싶다
택시를 타면 가끔 운전기사 아저씨들이 “스님은 누가 여비를 줍니까”하고 묻는다. 그러면 “가는 절에서 줍니다”하고 대답하곤 했다. 달리 요령있게 대답할 말이 없기도 했거니와 또 십여 년 전만 해도 절 집안 관습이 그랬으니까 말이다. 요즘은 처지도 그렇지만 객비 타 가며 만행 할 엄두도내지 못하게 풍토가 바뀌었다.
요 며칠 전 불교신문을 보니 ‘유랑 객승들의 금품요구를 엄단한다’고 했다. 사정을 헤아려 내린 조치이리라 싶으면서도, 만에 하나 중노릇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에게 선의의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상습적인 유랑 객승들과 구별한다 하여 선량한 스님들까지 악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모쪼록 갓머리 깎은 스님의 낭만스러운 봄 만행이 박절한 주지 스님들의 무차별한 신분증제시 요구나 호법부를 들먹거리는 으름장으로 망그러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들께게 낭만적 만행과 추억을 주자. 그 추억이 중노룻 하는 데에서 몇 권의 경전보다도 얼마나 더 값진 밑거름이 될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