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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에 다시 읽는 설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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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민희식 1985년 05월 39호
민회식 편역/이화여대교수

- 만법이 명확해질 때-

부처님은 라자그하(王舍城)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우루비라(優留毘羅) 고을의 네란샤라(尼連禪)강가의 한 거목 아래서 마침내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했다. 이것을 대각성취라고도 하고 수하정각이라고도 하고 득도라고도 한다. 그러면 그때 부처님이 득도한 사상적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불교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분명히 알고 싶어하는 바다. 그것을 가장 소박하고 간명하게 알기 위해서 초기의 불제자들에게 구송 전송되어온 간단한 경을 여기에 옮겨 본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처음으로 정각을 성도하신 세존은 우루비라의 네란쟈라 강가의 보리수 아래, 결가부좌한 채 철일 동안 해탈의 낙을 받으시며 앉아 계셨다. 칠일이 지난 후 세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밤 초경쯤 다음과 같이 차례로 연기의 법을 생각했다.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즉 무명(無明)에 의해 행(行)이 있다. 행(行)에 의해서 식(識)이 있다. (이하 識, 名色, 六入, 觸, 受, 愛, 取, 有, 生으로 이어진다) 생에 의하여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 절망(絶望)이 있다. 고(苦)의 집적의 시초는 이와 같다.
세존은 그래서 게(偈=운문)를 옮었다.
「진정으로 열의를 다하여 사유하는 성자, 그 만법이 명확해질 때 그의 의혹은 모두 사라졌다. 연기의 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 경의 서술은 다만 이것 뿔이다. 그 안에 부처가 성도했다는 정각의 사상적 내용이 두번 반복되어 있다.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 그것은 영원한 법칙이다-
연기법이 부처님의 득도 내용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교 이해의 기저가 될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부처님이 한 설법을 기록한다.
부처님이 제타숲의 정사에 계실 때였다.
「비구들이여, 오늘은 연기라는 것과 연생(緣生)에 대해서 말하리라. 우선 연기란 무엇인가. 예를 들자면 생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 이는 내가 있건 없건 정해진 것이다. 존재의 법칙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상의성(相依性)이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여 그대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의 정각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상의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다음에 연생이란 어떤 것인가, 예를들면 노사(苦)는 연생이다. 조건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건을 없앰으로서 노사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출가의 과제는 노사 혹은 고(苦)였다. 인간의 유한성에 짓눌리는 인간존재를 구제할 길은 없는가, 그 길을 부처는 연기의 법을 깨달음으로써 찾아 낸 것이다.

- 먼저 자기를 찾아내라-
바라나시(波羅捺)의 미가다야(塵野짧)에서 첫 설법을 한 다음 부처님은 아직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동안 그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된 사람이 60명이나 되었다.
어느 날 부처는 혼자 숲 속에서 쉬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숲 속에서 우왕좌왕 하며 무엇인가 찾고 있더니 부처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여기 여자가 한 사람 도망쳐 오지 않았읍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은 그 근처 양가의 자제였는데 약 30명이 각자 아내를 데리고 이 숲 속에 놀러 왔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만이 총각이어서 아내 대신 유곽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들이 정신없이 놀고 있는 사이 그 유곽의 여자가 그들의 돈을 홈쳐 달아나 버렸기 때문에 그 여자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정을 들은 부처는 그들에게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달아 난 여자를 찾아 헤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것과 어느 쪽이 중요할까」 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그들의 의표를 찔렀다. 정신없이 놀다가 또 정신없이 여자를 찾던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나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젊은이들 중 한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을 때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모두 거기에 앉아 보게. 내가 이제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법을 가르쳐 주겠네」
젊은이들이 모두 거기에 앉아 부처님은 언제 나와 같이 정연하게 인생을 바로 보는 법, 올바르게 사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아직 인생의 때가 묻지 않았었기 때문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다. 이것은 부처의 내관 즉 자기탐구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얘기다.
-라자그하의 거리에서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의 젊은 제자 앗사지(阿說示)가 라자그하 거리에서 탁발하고 있었다. 그 태도가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어느 수행자가 매우 감탄을 했다.
「만일 이 세상에 참된 성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그 사람의 제자일 것이다. 도대체 스승이 누군가 물어 보리라」
탁발에는 법이 있어서 탁발 도중에는 얘기 해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수행자는 그의 탁발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의 탁발이 끝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우 행동거지가 훌륭하고 얼굴빛도 빛나고 있읍니다. 당신의 스승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는 부처님의 제자며 그의 가르침을 받드는 자라고 답을 했다.
「그러면 당신의 스승은 어떤 것을 가르치시는지요? 그것을 들려주실 수 없읍니까?」
그러나 앗사지는 아직 부처님의 제자가 된 지 얼마 안되므로 그 가르침을 요령있게 말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 수도사는 그 편린이라도 다소나마 가르쳐 달라고 재차 물었기 때문에 앗사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 생긴다」
부처님은 그 원인을 설법하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멸하는 것에 대해서도 또 그와 같이 설법하신다.
그 설명만으로 그 수행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즉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부처님의 수제자가 된 사리불(舍利佛)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편집자 주 : 文字思想 5월호 민희식 편역. 부처님 오신 날에 읽는 불교설화 31편에서 발췌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