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참석자
서수생(경북대 대학원장)
이성일(MBC 라디오 부장)
무관스님(해인사 강주)
시명스님(해인사 교무)/사회
사회 : 저희 대담을 위해 바쁘신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을해는 불기 2529 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불기라는 것은 부처님의 열반 연대를 기념하여 된 것이고 부처님의 탄생 연대는 부처님께서 이땅에서 우리와 함께 같이한 80년의 생애를 더한 년대인 2609년이 됩니다.
이번에 해인지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기념으로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의의와 또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불교가 나아가야 활 새로운 방향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셨읍니다. 격의없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여러가지의 정신적인 면에서 영향을 미쳤고 그러므로 자연 민속적인 면에서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읍니다. 우선 역사 속에 나타났던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의미와 전통적인 민속에 대한 말씀을 국문학자이신 서수생 박사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서박사: 우선 생각나는 것이 관등의 습속입니다. 역사속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행사가 두 가지가 있읍니다. 하나는 연등이고 또 하나는 팔관입니다. 또한 이러한 행사 때에는 으례히 산화소향(散花燒香)이라고 하여 꽃을 뿌리고 향을 태우는 행사를 같이 하였읍니다.
등을 켜는 의미는 부처님은 중생의 빛인 까닭인데 무량수경에는 현정연등(顯正燃燈)이라고 해서 비단을 걸고 등불을 밝힌다는 말씀이 있으며 향과 초가자기 몸을 태워 향기와 빛을 전해주는 것이므로 그러한 행위 자체가 벌써 부처님의 자비정신과는 그 의미가 상통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강주스님 : 제가 알기로는 팔관회는 계율을 지키는 것과 연관된 행사의 하나이고 연등행사는 오늘날과 같이 4월 초팔일날 한 행사가 아니고 섣달 그믐에서부터 정월보름까지 연놀이를 할 때 모든 액을 하늘로 멀리 올려 보내려는 행사로서 경전에 나와 있는 분작일 행사로 신심을 촉구하는 행사라고 알고 있읍니다만 언제부터 4월 초파일 행사가 된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서박사: 본래 관등이나 팔관은 국가적인 행사였읍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에도, 그 당시 희랑조사가 국사였는데, 관등과 팔관제를 꼭 지내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이 행사가 언제부터 4월의 행사가 되었나 하는 기록은 자세히 없으며 오늘날과 같은 제등행열의 습속도 오랜 것이긴 해도 역사적인 기록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조 오백년 동안 숭유억불 때문에 그 역사적인 기록을 고의적으로 없애거나 기록하지 않은 흔적도 느낄 수 있읍니다만 그러나 기록에 남아있는 바로는 고려사에 공민왕 때 1350년에 4월8일날 궁중에서 연등행사를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로서 보면 그 전에 이미 4월8일 행사가 있지 않았나 하고 유추해 볼 따름이고 또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진흥왕 12년인 서기 551년에 순수한 불교신앙이 아닌 샤마니즘의 원시 무격신앙과 함께 행해진 기록이 보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초파일 행사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사회 : 이것은 여담입니다만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4월 초파일 행사는 어떤 기록이 없읍니까?
서박사: 근세 조선 태조 때 해인사의 중전(中殿) 탑을 개수하고 대장경을 모신 기록이 있읍니다. 그러니까 1392년을 전후로 당시 기록에 4월 초파일 행사에 대한 기록이 있읍니다. 사실 이태조 자신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지요. 무학대사를 스승으로 모신 까닭도 있지만 본래 고려의 호족들은 다 불교 신자였지요 근세 조선시대에 유교가 국교가 된 것에는 고려 말기의 불교의 하락에 더 많은 문제가 있었지요. 그 뒤의 기록은 확실히는 없지만 산중에서는 알게 모르게 지켜져 왔읍니다. 조선시대의 가사 문학에도 4월의 관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요
사회 : 교수님께서 사적인 사료를 풍부하게 말씀해 주셔서 퍽 도움이 됩니다. 그 밖에 다른 민속적인 행사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읍니까?
서박사: 특별히 민속적이라고 할만 할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아까 말한 산화공덕이 있지요 왜 신라향가에도 있드시 일반적으로 축하하는 곳에서는 으례히 꽃이 등장합니다. 4월 초파일 날 꽃을 뿌리고 꽃 공양을 올리는 풍속이 있었지요 특히 꽃 중에도 연꽃을 올리는 이때 연꽃이 없으니까 연꽃 모양의 등을 올리거나 연꽃 모양의 지화(紙花)를 을렸읍니다.
특히 이러한 습속은 오늘날 흔히 여성들의 교양의 하나이며, 일본에서 발달되어 있는 꽃꽂이의 원조(源祖)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꽃꽂이는 바로 우리 신라와 백제의 꽃꽂이에서부터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읍니다. 그러니까 불교문화는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날 춤을 추고 범패를 하고 즐겁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읍니다.
강주스님 : 어떤 종류의 노래와 춤이었을까요 오늘날 흔히 보이는 승무의 일종인가요?
서박사: 대체로 한국에 불교음악이 들어온 것은 신라 진감국사 때인데 어산(魚山)이라고 해서 범어(楚魚)가 물에서 유유히 춤추듯 아주 유장한 음악이지요. 대체로 혼자 부르지 않고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합창음악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신라시대에는 노래가 많았지요. 그리고 노래와 춤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순화해서 바른 마음이 되게 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종교 속에 특히 기독교에서 음악을 통한 포교는 불교에서 다시 본 받아야 할 것 같고 신라시대의 향가와 같은 차원 높은 음악이나 예술을 통한 포교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읍니다.
이부장: 네, 퍽 옳으신 말씀입니다. 딱딱한 논리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풀어 놓은 뒤에 더 높은 차원의 철학이나 종교적인 신앙이 행해져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에 예술적인 여러 방법이 도입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서박사: 신라시대에는 향가와 범패가 있고 고려시대에는 문종 때 균여스님의 보현십원가(普賢十原歌)와 같은 화엄경의 높은 이론을 향찰체로 된 노래로 부름으로서, 이조시대에는 서산대사의 수심가(愁心歌)와 같은 노래를 부름으로서 대중이 불교를 이해하는데 퍽 중요한 역할을 했읍니다.
아무리 높은 이론이라도 일단은 서민 대중에게 맞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포교의 가장 중요한 방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 : 향찰체란 어떤 형식의 노래였읍니까?
서박사: 향찰체란 향가체 즉 그 당시의 통용문이던 한자(漢字) 체로 쓰지 않고 순 우리말 형식의 이두체로 부른 노래로 10구로 되어 있읍니다. 화엄경 가운데에서도 40화엄의 사상을 노래한 것이지요
사회 : 우리의 옛 문화는 이렇듯 불교문화를 제외하고는 이야기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불교문화가 화려했읍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대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지 이 부장님께서 좀 말씀해 주시쇼
이부장: 항상 느끼는 것입니다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불교는 희망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대사회라고 하면 우선 물질이 고도로 발달되고 인간의 참다운 인격이 상실되고 있는 이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충분히 현대를 다시 새롭게 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젠 현대 세계가 물질주의의 마지막까지 온 느낌을 받읍니다.
사실 이첸 물질을 움직여 갈 정신이 절실해지고 있으므로 불교는 당연히 이러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므로 그런 의미로 희망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 : 네, 현대에서 불교가 감당해야 할 과제까지를 아주 희망적인 쪽으로 말씀해 주셨읍니다. 새삼 사명이 큼을 느낍니다.
이부장: 그런 것과 아울러서 서박사님 말씀대로 우리 불교가 역사적, 전통적으로 볼 때에도 민속적 핵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 맥이 계속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러므로 불교가 승단의 것만이 아닌 민중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와서 불미한 점이 있었던 것은 제가 생각할 때에는 민중의 뜻을 망각하는 데서부터 나온 행위라고 보아지는데 우선 불교는 승단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임을 확실히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대승불교의 정신을 일러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둘이 아니지요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것이 뭇 중생의 교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들의 생각부터 조금 풀렸으면 합니다. 복장이라던가 행동 하나 하나에 너무 제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스님들이 일반인과 같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일반인과 좀더 가까워 질 수는 없는지, 저희 방송국에 오실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인데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그렇지 않은데 스님들은 늘 이질감을 느끼고 뭔가 서먹서먹한 면을 느낄 때가 많이 있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개방할 수는 없읍니까?
사회 : 네, 퍽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읍니다. 상구보리와 하화중생하는 입장에서 볼 때 갖은 방편으로 구제의 방편을 펴는 것이 대승불교의 정신이겠읍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도 가지고 있읍니다. 스님들이 계행 내지는 승행을 가장 잘 할 때 그것이 오히려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 보다 수승한 포교가 된다고 생각하는 승단의 의견도 있읍니다. 아무튼 전통적인 수행인의 모습과, 날로 바빠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적용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모든 수행자의 공통된 고뇌라고 생각됩니다.
강주스님 : 금방하신 말씀으로, 승단은 70년대에 이미 중요한 논쟁이 있었읍니다. 또 얼마 전에는 전법사(傳法師)라고 하는 제도를 만들어 포교의 활성화 문제도 나왔읍니다만 아직도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최고 종립학교인 동국대학을 졸업환 스님들이 군승(軍僧)으로 활동도 하고 있고 각계 각층에서 그 역할을 많이 하고 있읍니다.
서박사: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무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 불교적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의 포교는 황무지와도 같읍니다. 참으로 재가 보기에도 안타깝습니다. 약간 건드리기만 해도 다 불교인이 될텐데요 제 생각은 포교사는 포교사대로 수행승은 수행승대로 이원화(二元化)되어야 하리라 생각 합니다.
사회 : 사실 한국불교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전통을 지켜왔고, 그러면서도 민중 속에 있기를 희망해 왔읍니다. 그러나 전통승가가 고집해 온 계행의 문제를 고수하기에는 현대사회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식당엘 가도 그렇고 바쁜 일이 있어 택시만 타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분이 많아요. 불교는 현대화되어야 된다고 하면서도 스님들에게 현대화된 여러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거나 이용하는데 인색한 것을 볼 때마다 당혹감을 느낍니다.
서박사: 한국사람들의 인식이 문제라고 봅니다. 또 자기는 아무렇게나 살지만 스님을 비롯한 성직자나 교직자에게는 지나치게 윤리적인 면에서 완고한 점이 있읍니다. 이러한 면은 우리사회가 그 동안 공적인 것과 사적인 문제의 불분명성 및 개인과 전체적인 것에 대한 한계와 그에 따른 인식이 부족한 점등에 그 원인이 있읍니다.
사회 : 진정한 불교정신은 대중속에 있어야 할 것이고 또 민중 속에 불교정신은 꽃피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송가(僧伽)는 일반 민중과는 또 다른 차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승 불교의 보살이 갖은 방편으로 민중을 구제해야 함도 한결같은 이념인 것입니다. 구제란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하는 행위가 같이 동참하는 행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스컴의 영향은 현대사회에서 팩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교의 방법 면에서 불교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이부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부장 : 방금 말씀하신 대로 매스컴의 영향은 지대(至大)합니다. 포교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하며 효과적으로 해야겠읍니다.
사실 이번에 향적스님이 대담을 청했을 때 퍽 놀랐읍니다. 「해인」지가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이런 훌륭한 지면이 있음에 우선 반가왔고 이런 사업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겠고 여러 계층에 영향을 주어야 겠읍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 많은 영향을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지식인 등을 겨냥한 포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영상매체인 T.V를 비롯한 여러 포교방법을 개발해야 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린이 포교도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지금부터 15년쯤 전에 대구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처음 생겼을 때 애들이 처음엔 그것을 굉장히 타고 싶어했지요. 그러나 대구백화점에서는 아이들을 타지 못하게 했읍니다. 우리와 비교해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른들은 층계를 걸어 다니게 하고 아이들이 마구 와서 타는 것을 허용했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의 고객이기 때문이지요 또 한가지 불교 공예품을 아이들이 잘 가지고 놀 수 있게 개발했으면 해요. 더욱 불교와 친숙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서박사: 각 대학마다 불교학생회가 있는데 지도교수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불교를 알고 있는 교수가 부족하거든요 대학생회 등은 이미 다 되어있는 사람들인데 조금만 힘을 기울이면 불교인이 될텐데…, 대학에서도 포교가 절실함을 느낍니다.
사회 : 포교의 여러가지 면등을 잘 지적해 주셨읍니다. 그 동안 불교는 전통문화로서 그 위치를 지켜왔읍니다. 사실 지금 사회는 지나치게 서구화되고 있고 전통문화에 대하여 등한히 해 왔읍니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한국이 근대화 되는 과정에 서구문화에 지나치게 경도되었고 다른 아시아 민족들과 달리 일본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였고 해방될 때에도 마치 서구문화의 대변인인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켜준 것이란 인식을 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한 내적으로 는 이조 오백년 동안 양반문화에 대한 중요 그래서 동양의 문화는 모두 낡은 것이란 인식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의 중추적인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서구문화에 탐닉한 적도 있었읍니다만 70년대와 80년대에 우리의 뿌리를 찾는 운동 즉 한국의 주인의식이 팽배해지고 있읍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 불교문화가 어떤 전통을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물려주어야 될지, 어떤 문화를 전수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서박사:지금 현시대는 서구 문명에 압도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정신적으로는 강할지 몰라도 외형적으로 볼 때는 전부 압도되어 가고 있고 인간 소외의 문제가 차츰 심각하고 삭막해가고 있읍니다. 인륜도덕이 땅에 떨어져 있읍니다. 과거에 비해서 좋든 나쁘든 우리는 일반적으로 풍요해졌고 물질적으로 잘 살고 있읍니다. 제가 미국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느낀 점으론, 동양이 지닌 미덕 가운데서도 효도와 효행의 정신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적 유산은 모두가 불교 문화재입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싶은 것은 우리의 고대의 전통문화입니다. 그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대담의 순서상 제일 먼저 말씀해 주셔야 되는 것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뒤로 되어졌읍니다만 부처님 오심의 근본사상에 대하여 강주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강주스님 :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의의를 말하자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읍니다만 우선 부처님의 공덕입니다. 그 공덕 가운데에서도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중생들을 위하여 가르쳐 주심입니다. 부처님이 35세 때 성도하시고 그 후 45년간을 쉼 없이 전법해 주신 것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성도지에서 녹야원까지 200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몸소 그분의 인격과 공덕을 찬탄하고 싶읍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부언하고 싶은 것은 그 동안 한국의 역대 스님들의 난행 고행입니다. 그 분들은 실제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하셨읍니다. 실질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불교가 들어온 후 1600년 동안 과정에서 불교가 성했던 시기에서 본다면 스님들 스스로가 하화중생 하는데 뛰어 들었읍니다. 그 당시의 스님들은 당시의 사회배경과 지금의 사회배경이 다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스님들이 의사(醫師)에서부터 시작하여 못하는게 없었읍니다. 성직자들이 모든 역할을 담당했지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스님들이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인으로서 기능을 스스로가 갖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상구보리하는 쪽에만 치우쳐 있고 하화중생하는 것에는 기능도 사명도 없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그러한 문제의식마저 갖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 의식 속에서 종단의 정화 이후 지향 되었던 포교, 역경, 교육 등 세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해서 포교의 사명감도 길러지고 역경을 하는 기본을 기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박사: 동양이 처하고 있고 또 우리 대한민국이 처하고 있는 여러가지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세계문학사적인 면에서 정신문화가 동양문화를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변화되지 않겠느냐 하는, 긍정적 측면에서 봐주신 그런 쪽으로 본다면 불교에서도 지금이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어린이, 승려, 포교사 교육 내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도 교육체제가 전반적으로 검토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강주스님 : 포교의 문제에 있어서 부처님 당시의 「부루나」라고 하는 스님의 행적이 참 귀감이 되는데 흔히 부루나의 전도선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읍니다. 부처님 당시에 슈류나국이라는 서쪽에 위치한 나라의 사람들은 성질이 포악하고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읍니다. 부루나존자가 이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날 때의 일화입니다.
부루나여 슈류나 지방 사람들은 포악하고 사악한데 어떤 마음으로 너는 그곳으로 떠나느냐, 하고 부처님께서 물으셨읍니다. 그러니까 부루나 존자가 내가 거기에 갈 때 그 사람들이 욕을 한다면 전 이렇게 생각을 하겠읍니다. 이 사람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구나 비방만하고 날 때리지 않고 추방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이라고 난 생각하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런 사람들이 너를 때리고 비방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부루나 존자가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참 선량한 사람들이라 비방하고 때리기만 하지 내 목숨을 빼앗아가지 않는구나.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러면 네 목숨까지 빼앗을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까 그 부루나 존자가, 슈류나 민족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수행을 해서 이 욕심덩어리로 뭉쳐진 이 육신을 벗어나서, 괴로움 덩어리를 벗어나서 해탈을 얻고자 했는데 내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이 사람들은 나에게 이와같은 욕심덩어리를 떠나서 참으로 자유로운 해탈을, 자재무애한 해탈을 얻게 해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겠읍니다. 그러니까 목숨까지도 버리겠다는 그런 각오로 포교를 하겠다는데 부처님께서 그러면 너는 그와 같은 신념이면 됐다. 떠나라. 그래서 그곳에서 포교를 하다가 최후에는 거기에 있는 이교도들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도 꼭 그와 같은 신념, 사명감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되겠고 지금까지 불교가 해방 이후에 정화의 와중 속에서 교육에 대해서 등한히 해왔던 점에 대해서 이런 기회를 빌어서 새롭게 재 조명을 하고 그런 교육적인 여러가지의 방법, 시설등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고 또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읍니다. 이제 충분히 좋은 의견 말씀 많이 해 주셨으니까 이젠 현재 한국불교에 대한 반성을 하는 의미에서 제일 먼저 한국불교가 고쳐야 될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말씀해 주십시오
서박사: 우선 한국불교가 앞으로 해야 할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스님들의 교육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강사스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한국 불교의 문제를 보려거든 교육현장인 강원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컬리큐럼이나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이 지나치게 고루하다는 점입니다. 하루 빨리 대학에서와 같이 교양과목을 확충해야 합니다. 특히 어학과 사학(史學), 국어 등을 가르쳐야 하리라고 봅니다. 지금은 세계가 자꾸 좁아져 지구촌이라고 하잖아요. 전근대적인 포교 방법으로는 사회를 교화할 수가 없지요
강주스님 : 여러가지 점에서 강원 교육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퍽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읍니다. 저희 강원에서도 방금 서교수님께서 지적해 주신 것들을 시도하고 있읍니다. 옛날에는 강원의 수업 연한이 10년 이상이었읍니다만 현재는 강원교육이 일반 대학의 제도처럼 4년으로 하고 있으며 수의 과목으로 율원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승행(僧行)을 더욱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제도로 활용하고 있읍니다. 교육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최고의 목적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서 그 교육목표는 매년마다 지표가 달라져야 될 것 같읍니다. 그러려면 구조적인 것과 시설적인 것, 컬리큐럼이 잘 조화되어 전통적인 교육방법과 함께 이루어져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해인사에서는 더욱 좋은 스님네가 많이 나오도록 저희가 노력해야 할 것 같읍니다.
이부장: 한국불교 가운데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심심찮게 뉴스거리가 되어온 종단의 불화문제가 하루 바삐 불식되어야 겠읍니다. 불교의 위신의 추락은 물론이고 포교문제에 치명적인 해독을 입힌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겠읍니다. 그리고 젊은 신도와 남성신도가 더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마디로 불교가 젊어져야 된다는 말이 되겠읍니다.
사회 : 지금까지 여러가지 문제를 잘 지적해 주셨읍니다. 이러한 염려들은 아마 한국불교에 산재한 여러 문제의 매듭을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언급해주신 교육의 문제, 포교의 문제, 미래 불교의 방향 설정은 하루 아침에 이룩되지는 않겠지만 차츰차츰 우리들이 염려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보다 밝은 불교의 미래를 가지리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오늘 바쁘신 시간을 내어 특별히 참석해 주신 세분께 월간 ‘해인’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