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에
부처님의 생애를 서술한 책들은 이미 중세 인도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나라에서 각기 다른 언어로 수 없이 많이 제작되어 그 정형에 이를만한 것만해도 수종(數種)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해인지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서술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퍽 식상하고 부질없는 중복에 짜증스러움을 느끼는 분들마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교리적 체계를 이야기 하기 전에 그 분의 생애를 안다는 것은 곧 그분의 사상적 의미를 아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 또한 그 분의 말씀을 도해하며「사상」이라든지 「교리」라든지 하는 것으로 틀에 넣기를 좋아하는 현대인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그 분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느끼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분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과 함께 그 분의 사상이 어떻게 응결되있는가를 서술해 봄으로써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그 분의 말씀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떠오르는가를 다시 한번 파악해 보는 작업이 이 글을 쓰게 되는 주된 이유이다.
붇다(Buddha) 이전의 인도
불교라고 하는 종교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인도가 가지고 있던 사상적 배경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종교인 불교가 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종교와 다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한 종교가 나타나는 데는 그 종교적 사실에 앞서 거대한 선구문화의 성숙과 함께 시대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인류 문화의 태동기에 그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인더스강 유역에서 일어난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의 선구적 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15~12세기 사이에 북서 인도를 침입한 아리안들은 차츰 그 영역을 넓히는 한편 그들의 종교적 세계를 확립해 갔다. 리그베다(RgVeda)를 포함한 다신적·범신적(汎神的)· 유일신적인 다양한 종교적 요소들이 함께 하는 베다가 지배적인 종교 성전이었다. 베다는 신에 대한 종교적 찬가집(讚歌集)으로 리그베다(Rgveda), 삼마베다(Samaveda),야주르베다(Yajurveda),아루트드베다(Atharraveda) 등의 4베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베다의 주석서에 해당하는 문헌으로서 브라마나(梵書)와 우파니샤드 같은 철학적 사유들이 나타났는데 이것들은 종교적이며 신앙적인 베다에 사상적 철학적 뒷받침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지식을 중시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우주의 중성적(中性的) 원인인 브라만과 그 인격적 개인적 원리인 아트만(Atman)이 동일함을 인식함으로서 아트만은 개체적 존재에서 우주적 총체적 존재에도 합일되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적 상대적 고통을 벗어나서 절대적인 안락과 평화의 경지에 살수 있다고 역설되었다.
곧 이러한 우파니샤트의 영향은 범아일여(梵我一如) 라는 인도의 독특한 사상적 기반을 부여했는데 이것은 그 이후 무수한 인도 철학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비쳐 그 기본적 사상의 틀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인도 사유를 언급할 때 범아일여사상은 인도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 되어 있다.
아무튼 우파니샤트 시대는 인도의 수 많은 철학사상가들이 마치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를 방불케하는 철학의 황금시대를 꽃 피우게 했다.
당시의 사상적 특징은, 서구 유일신적 종교 전반에서 보이듯이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가 절대타자의 관계이거나 조물주와 피조물의 주종(主從)의 관계, 2분적 관계가 아니다. 우주와 개아의 본질을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인도 사유의 특정인 것이다. 여기서 파생하여 불교에서는 중생과 부처님의 관계가 곧 하나로 파악되어졌으며 이러한 사상적 특정은 후대 선불교(禪佛數)에서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고 하는 사상적 맥락을 가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도의 사유 중에 빠뜨릴 수 없는 하나는 철학과 종교의 일치이다. 이것에 비하여 서구에서는 종교와 철학의 불일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서구에서의 철학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보면 종교는 신에의 믿음의 길이요, 철학은 인간의 이성과 오성의 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철학도 인간의 산물이기 때문에 종교의 절대적인 세계에로의 근접을 허용할 수 없는 관계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도인들은 철학이 종교의 이론적 근거로, 종교는 철학적 이론의 실천으로 상호 보완의 관계, 즉 지(知)와 행(行)이 서로 어우러져서 나타나는 총체로서 파악되어 왔던 것이다.
흔히 서구 종교화자들이 불교를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져왔던 사고의 틀로 불교를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했던 지극히 위험하고 인도사상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로 빚어진 편협한 생각이다.
이러한 우파니샤트로 인한 사상적 성숙은 많은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화폐경제와 함께 이때까지 굳게 지켜져 내려오던 4성 계급인 브라만(제사계급), 크샤트리아(왕·귀족), 바이샤(서민), 수드라(천민계급)의 4성 계급이 차츰 허물어졌다. 그리하여 이때까지 지배계급이던 브라만의 권위가 서서히 몰락하면서 왕과 귀족의 세력이 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사상과 화폐경제의 사회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어 차츰 고대국가 형식인 도시 국가와 강대한 중앙 집권적 국가가 탄생하였다.
이 당시 복잡한 인도의 사상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대표적 여섯 사상가를 소개함으로써 부처님의 탄생시 인도사상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불전에서는 그 들을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부르고 있는데 푸라나, 피쿠다, 고살라, 아지타, 산자야, 니간타 등이 이에 속한다.
푸라나는 당시의 사회에 있어 악으로 생각되어지던 살생·투도·사음·망어 같은 것을 행하여도 악의 과보를 받지 않으며, 선으로 생각되어지던 보시·극기 같은 수행을 하여도 선한 과보를 낳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일종의 도덕부정론을 주장하였다.
파쿠다는 인간 존재가 지(地)·수(水)·화(火)·풍(風)·고(苦)·락(樂)·생명(生命)의 7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영혼)도 자유로운 의지의 작용이 불가능한 물질적 요소로 취급하고 있다.
고살라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영혼·지·수·화·풍·허공·득(得)·실(失)·고·락·생·사의 12종을 들고 이것들을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것이 업(業)에 의해 규정된다고 하는 종래의 윤회설을 부정하여 유전(流轉)하는 것을 모두 한결같이 운명이나 환경, 천성(天性)에 지배된다고 하는 일종의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을 주장했다.
아지타는 인간은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나 현명한 자도 신체의 파멸과 동시에 소멸하고 선업 또는 악업의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을 감각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부정한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내세가 존재하느냐」의 물음을 받았을 때,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또한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니칸타는 자이나교의 창시자로 자이나교의 기본 사상은 우주의 구성요소를 영혼과 비영혼으로 나누는 것이다. 영혼은 이른바 넋인데, 자이나교에서는 동물들 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지·수·화·풍에까지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비영혼은 법(운동의 조건), 비법(정지의 조건), 허공, 물질의 네 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혼과 합하면 5가지 실체가 존재하는 셈이된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命)은 물질의 업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거기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처인 지복(至福)의 상태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행을 해야하므로 그들은 수행자로서의 엄격한 계율을 지켰는데, 불살생·진실어·불투도·불사음·무소유(무집착)의 다섯가지가 계율의 중요한 조항이었다.
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사상적 혼란이 야기된 인도사회에서 탄생하여 종교적인 방황을 겪으면서 구도의 길에 나서 마침내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그것을 전 인류를 향해 설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