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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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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범휴 1985년 03월 37호
「길은 어디나 있고 길은 아무데도 없다」고 미당(未掌) 선생님이 젊은 시절애 생(生)을 노래하던 싯구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우리 삶의 깊이를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조용히 입적하신 응민스님의 소식을 접하고 가슴 속 깊이 흐느껴오는 벅찬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조용히 생(生)을 마치고 싶다고 평소 늘 말씀하시더니 수덕사의 그 지중한 인연들을 어찌하시고 그렇게 홀홀히 떠나셨읍니까? 오고 감이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들어오고 있읍니다만 범부의 눈엔 분명히 오는 것은 오는 것이고, 가는 것은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진한 감정들은 분명 이생에서 스님과의 만남으로 맺어진 많은 기억들 때문일 것이요 특히 그 기억들이 저의 아직 어리고 미숙했던 시절의 일들이라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십오년 전인가 만공스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던 수덕사 전월사에 법진 노스님이 계실 때 그 곳에서 스님을 처음 뵈온 후 스님의 깔끔하시고 맑게 수행 정진하시는 삶이 근래 혼탁한 불교 집안에서는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 늘 생각해왔읍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으나 짬진 스님의 삶은 불교를 지탱해온 숨은 보배라고-.
아직도 이 땅에는 젊어지고 가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 자의 몫으로 남아 있읍니다.
흔히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죽음의 빛깔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리보이기도 합니다.
불전(佛傳)에 의하면 부처님은 열반을 매우 평온환 상태로 맞으셨읍니다. 나이 여든에 이르러 최후의 안거를 베살리에서 지내시고 쿠시나라에 이르러 사과나무 숲에서 마지막까지 제자들에게 자비롭게 가르침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은 평안히 열반에 드셨던 것입니다.
이 같은 부처님의 모습에서 얼마나 인간적이셨나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난다, 나는 이제까지 모든 법을 다 가르쳐 왔다. 법을 가르쳐주는데 인색해 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늙고 기운도 쇠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 앞에서 다정다감했던 시자 아난다가 펑펑 울었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느 비평가의 말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이 기적이 아니라 그 빈약한 교리로 기독교가 2000년이나 서구문명을 이끌어온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낍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에게 해석의 어려움을 안겨다 준 예수의 마지막 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15:34, 마태27:46)라는 애절한 울부짖음은 예수 자신의 우주적·신화적 이해와 구체적·인간적 이해가 엇갈리는 순간이라고 김용옥 교수는 지적하고 있읍니다.
20세기 종교계의 기적은 조선반도에서 일어냈으니 가장 짧은 기간에 기독교가 그토록 엄청난 양적 팽창을 보인 예가 세계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며 서울에서만도 교회수가 다방수를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샤마니즘의 이해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는 김교수의 지론은 탁견이라 할 것 입니다.
그는 또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있읍니다. 종교적 의미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이어야 활 것이며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신사참배에 굴욕을 느꼈던 사람들이 왜 야웨 참배에는 그렇게 일고의 반성도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신란한 비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결코 은폐되어서는 안되며 설사 그것이 이 시대의 상식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도 내가 깨달은 것일진대 그것을 말함에 있어서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역사적 진실은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특정한 인간들의 도덕적 의지에 의하여서만 계속 예곡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그의 말은 참다운 종교인은 무신론자 이어야만 한다는 말과 더불어 양심을 대변한다 할 것입니다.
진실을 다한 삶일 때 비록 미완성으로 끝난다 해도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그의 고백처럼 그러한 진실에의 열정으로 이 땅의 불쌍한 중생들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많은 이들이 출현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할 때 무한히 열린 길이 인간의 길이며 나의 길이며 동시에 전체의 길로서 기(氣 Energy)로 충만된 우주공간에 낱낱의 사물마다 제 갈 길이 열려 질것입니다.
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우리의 삶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내야 하는지를. 인간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상황적 존재인 것이고 이러한 상황의 커다란 한 장(場)을 우리는 역사라 부르고 있읍니다. 우려는 역사속에서 역사적 한계인식과 보편적 질서에 대한 솔직한 수용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초월적 도그마나 정체된 자기독단도 결코 용납돼선 안될 것입니다. 이 모두 역사의식-시간속에 내재하는 인간 삶의 연장에 대한 신뢰-의 결여에서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한국불교정화가 시작된지 꼭 31년째 입니다. 이미 한세대가 지난 이 마당에서 철저히 우리 불교를 되돌아 볼 때 너무나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을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정에 대한 제 1차적 책임은 먼저 선지식 스님들이 져야 하고 다음으로 수좌스님들이 져야 하며 다음으로 사판스님들이 져야 하고 그 다음으로 대처승이 져야 하고 마지막으로 신도들이 져야 한다」는 휴암스님의 말씀은 병든 오늘의 한국불교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뼈아픈 자기반성 없이 그 어떤 불교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정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으로 교육에 대한 재고가 요청되고 드디어 승가대학 설립을 운위하고 있음을 듣고 있읍니다만 솔직히 근본적인 의식의 혁명 없이는 그 어떤 행위도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의식의 개혁은 교육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불교가 〈젊은 중들 학교 보내면 모두 환속한다〉라는 망발을 함부로 내밷는 사람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풍토 속에서는 교육의식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난감한 일입니다.
승가대학 설립에 우선하여 이러한 교육의식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과 더불어 실질적 입장에서 교수 요원의 장기적 육성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의 확보를 위한 저변교육이 선행돼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선행되지 않는 한 설사 승가대학여 세워졌다 해도 발전적인 기대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도그마화된 낡은 틀에서 깨어나려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봐서 한국불교가 아주 썩어문들어지지는 않을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