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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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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제월 1985년 03월 37호
「우리가 죄를 많이 지은 탓으로 낯선 자들이 들고 일어나 성스런 양떼를 인도하려 한다. 이들은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속적인 민족주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다른 민족들과 똑같은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유태교는 민족감정 토지, 언어라는 세가지 토대 위에 서 있으며 이 중에서도 민족 감정이야말로 가장 찬양할만한 요소이고 민족감정이야말로 유태교를 보존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편 이들은 율법과 계명의 준수는 개개인의 뜻에 맡길 사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주여 이 사악한 자들을 질책하소서. 예루살렘을 택하시는 주께서 그들의 입을 봉해 주소서.」
이 글은 1900년대 동유럽의 한 전통파 랍비가 유태교가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진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태민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유태민족주의 시오니즘에 대해서 쓴 편지이다. 이것은 분단되어 있는 한국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나, 신제국주의(정치 및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에 대해서도 누구인가 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이다.
불교가 민족종교라는 생각이나 종교인이 민족주의적인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행동양식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불교가 민족종교냐 아니냐는 민족종교라는 말의 개념규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민족종교라고 말한 경우의 민족종교는 서구(기독교적인)의 제국주의에 대하여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것, 우리화된 종교라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족종교는 그 민족을 위한, 그 민족의 고유환,그 민족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종교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유태교나 인도의 힌두교 그리고 일본의 신도 등을 민족종교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라면 차라리 단군교를 민족종교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화된 우리 것이라는 의미의 불교라면 전통종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한국적인 상황아래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인간 해방을 위한 논리라든가 현실에 대한 상황논리적인 성격을 띤다하더라도 불교적인 논리나 행동양식을 굳이 빌지 않고서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문제나 민족주의 운동이 낳은 역사상의 과오나 한계는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을 형성하고 구성하는 요소가 지닌 속성들은 필수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며 민족이라는 개념 역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속성은 공통의 혈통, 언어, 국가, 관습과 전통, 종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틀 중 어떤 것도 민족의 존재나 정의를 내리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혈통은 원시공동체로서 부족을 구성했으나 근대의 민족들은 서로 혈통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인종들의 혼합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공통의 혈통으로 구성된 민족은 극소수이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혈통이 같다고 해서 같은 민족이라든가 혈통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규정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교적 순수성이 인정되고 있으나 미국이나 캐나다 민족 등은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혼합민족으로 형성되었고,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이 되고자 하는 이민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민족의 구성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언어는 민족의 형성이나 민족문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한편 독자적인 언어를 가지지 못한 민족도 있고, 같은 종족 이면서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는 민족도 있다. 스위스 민족의 경우 네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민족들은 모두 스페인어나 포루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습과 전통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한 국가나 민족에 있어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화된다. 몽고족은 징기스칸 시대에는 정복을 위한 호전성이 몽고족의 민족성이라 생각되있으나 16세기에 그들은 라마불교를 받아들이게되면서 평화를 사량하는 경건한 민족성을 갖게 되었다.
정치적 지배체제로서의 국가는 민족의 형성에 보편적인 요소로서 작용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는 공통의 영토와 정치적 지배체제로서의 국가를 가지지 못했으나 민족이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이다. 이와같이 종교 자체가 새로운 민족을 창조하여 민족종교의 양상을 떨 수도 있으나, 종교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것은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며 한 민족이나 국가내에서도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도 민족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는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프랑스 민족주의 기관지에서 「프랑스 민족은 카톨릭을 신봉한다. 카톨릭을 믿지 않는 자는 진정한 프랑스 민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카톨릭을 믿지 않는다고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민족을 형성하는 혈통이나. 영토, 관습과 전통, 종교동의 객관적인 요소-구체적인 실체로서의 민족 형성 요소-들의 일부 혹은 전부의 종합으로 민족이 구성된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적인 속성이 없어도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거나, 거기에 속하려는 의지라는 본질적인 요소 하나만으로도·민족이 존립활 수 있다. 민족을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객관적인 요소와 민족의 혼이나 정신이 아니라,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힘이며 의지에 있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것이 아니라 한 민족으로서 살고자 하는 개개인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병폐가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낳았다면, 민족주의는 근대사회의 불균등하게 발전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같이 민족주의는 후진국이 선진산업 국가의 제국주의적-정치적, 경제적 ?침략으로 부터 민족의 독립을 유지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에서 소속을 갖는다는 사실은 전혀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유효한 정치적 기준이 민족적 정체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역사적으로 하나의 변칙인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사회과학적인 법칙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선이나 합리적인 진리일 수도 있다.
정치 조직의 이상적 형태로서의 민족국가는 민족을 모든 창조적인 문화적·에너지와 경제적 복지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민족이라는 구체적 실체에 가치판단의 기준을 두거나 모든 행동의 근거를 두고, 민족을 정치적 행위나 문화적 생활의 원천으로 생각할 때 현대 정치적 민족주의의 온갖 극단적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파시즘이 낳은 비인간적인 행위는 한 예에 불과하다. 민족적 관점에서 자국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의 갈등은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목표는 인류의 평화나 세계의 조화에 있는 것이 아녀라 배타와 독선에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민족주의에서 강조하는 문화의 원천으로서의 민족은 확대 해석이 될 때에는 국수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역사해석을 전도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가 문화생활의 신성한 원천으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경제적인 면으로서의 민족주의-민족경제-론은 민족이 경제적 복지의 원천이라는 것으로 개인의 복지는 오직 국가와 민족의 경제력에 의해서만 성취되고 보장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낙후된 후진국이 자유방임적인 경제체제하에서 불평등한 위치나 불균등한 경제적 이익 분배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족자본을 형성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와의 관계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면족주의는 민족이 주권국가로 조직될 수 있는 명백한 근거 역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다양하며 종족, 언어, 종교, 정치적 전통 등으로 서로 뒤섞여 있다. 역사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국가를 이루면 안되는지, 왜 민족이라는 혈통에 의해서만 국경선이 그어져야 하는지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민족주의가 각 민족으로 독립하여 조화로운 국가사회를 형성한다고 하지만 민족주의가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의 극치라기보다 오히려 그 부정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발전은 인간의 공간범위가 확대되고 하나인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적인 사고나 태도는 역사적인 발전과정이나 세계적인 변에서 방해적인 요소가 많고 한계점을 갖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의 정치적,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민족의 전능성 앞에서 세계가 하나라고, 지향하는 인류의 희망이 요원한 관념에 불과한 이론이나 꿈으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간의 범위는 언제까지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 생활이 확대되고 점점 좁혀지는 지구 위에서 모든 민족들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므로 초민족적인 세계 공통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활 것이다.
세계주의란 본능적인 애정이 아니며 이성적인 반성과 도덕적인 본성의 창조물이다. 이러한 세계주의와 분과적 성격의 민족주의와의 관계에서 가지는 문제는 역사상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와의 결합이 낳은 갈등에서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불분명하게 취했으나 레닌의 제국주의론, 스탈린의 민족주의론, 그리고 사회민족주의의 민족주의 이론은 전락적인 의미에서의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결합이었다. 민족주의 문제들에 대한 볼세비키 지도자들의 태도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위해서 사회주의적인 운동에 도움이 되는 한계내에서 민족주의를 수용하게 되었다.
레닌은 그 자신의 조국이 패배하는 것이 사회주의운동의 목표라고 선언하면서 사회국수주의자들을 배반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국가가 일단 실제적으로 수립되자 마자 일국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러시아의 역사와 공산주의의 희비극으로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동맹과 갈등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도 민족주의 운동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어떤 단계에서 좌익(긍정적인 의미로써)으로 간주되었던 민족주의자들이 다음 단계에서는 우익(부정적)으로 매도된 예가 많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한 일이다.
사회학자들은 민족주의 운동과 종교운동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지적하고, 둘 다 영감에 호소하는 운동이며 근본적으로는 문화적인 운동이나, 우연히 따르는 정치적 결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종교 전쟁들이 인간의 행복과 문명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위협을 주었을 때 합리주의적인 물결이 종교의 비정치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종교는 전정한 존엄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정신적 힘의 하나로 남아 인간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드높여 주었다.
민족주의 역시 정치적 조직과의 연대를 갖지 않고서도 친밀화고도 감동적인 감정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야합이 낳은 결과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적 이상을 현세적 방법으로 이루려는 것 역시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반만족적이라거나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족에 주의라는 이데을로기성을 부여하여 궁극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고 행위의 근거가 되있을 때 가지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다. 민족주의라는 얼굴을 가지지 않더라도 민족애나 애국심이라고 말하는 숭고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인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 지상의 과제이긴 하지만 민족주의에 의한 통일의 논의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교적인 입장이라면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나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의한 통일의 논리를 제시할 수도 있다.
화쟁사상은 불교를 일종 일과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교리를 하나로 일관시키고 각 종파를 화합하여 전 불교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통일되나 하나로 살아나고, 개체로써 독립을 가지면서 통일된 것으로 만나려는 것이다. 화쟁사상은 역사적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근원적인 이념이 되었으며 원효의 정토사상의 논리적인 근거가 되었다.
법화경의 회삼귀일의 논리는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은 불(佛)의 일승(一乘)을 보이기 위한 방편으로 일승 없는 삼승도 없고, 삼승 없는 일승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