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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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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시명 1985년 03월 37호
인간은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불교에서의 연기(緣起)나 인연이라는 말은 인간이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현상들은 여러 각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는 바르고 옳은 관계도 있을 것이고 추하고 사악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롭고 신선한 창조로 이어지는 관계도 있으며 자신과 이웃을 함께 파멸로 몰아넣는 관계도 있다. 그러므로 관계 즉 만남은 개인이나 사회 전체를 막론하고 퍽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국의 사학자 토인비는 그의 명저(名著)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문명사(文明史)의 이론적 근거로 각 민족간의 문명이 서로 관계에 의해 발전되는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거니와 오늘날 사회학자들도 각 사회 계층의 만남이 어떻게 형성되느냐 하는 것을 사회사의 주된 관점으로 보고 있다.
개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다양한 사회, 문화적 관계는 인간에게 그 관계 만큼이나 다양한 이상과 꿈을 주기도 하지만 그 반면에 소외와 불안과 고독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국과 같이 자기 문화에 대한 주체적 축(軸)이 허물어져 있는 사회에서는 무분별한 세계 문화의 전시장이 되기에 알맞고 또한 세계 문화의 각축장이어서 여간한 주체의식이 없이는 그 혼돈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산되어진 저질 문화의 쓰레기장에 자신이 내팽겨쳐져 있는 줄도 모르기가 십상이다.
그 예로 시내 극장가의 간판들은 이제 예술이라는 고상한 미명아래 국적 불명의 갖은 외설과 그들 말대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또한 교묘하고도 가공할 만한 범죄 수사극이 오락성만 강조한 나머지,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유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문화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계층은 청소년들이라는 점에서 걱정과 우려를 표방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청소년들의 범죄는 날로 광폭하여 폭력화 조직화 되어 왔다. 그런 와중에서 아직 미성숙한 가치관과 확실한 도덕적 자각도 지표도 없는 그들에게 자율이니 자유니 하는 미명아래 무분별한 자율만을 주었다.
우리 실정에는 맞지도 않는 서구 교육제도만 본받아 교복 자율화와 함께 교권의 상실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한편 그들을 선도해야 할 사회 일각에선 그들을 겨냥한 상업주의적이고 말초적인 감각 문화를 대량 생산해 놓고 그런 오락문화 의 와중으로 그들을 내보내 놓고는 점잖은 어른들은 뒷전에 앉아 구호도 화려하게 「청소년의 해」니 「청소년의 선도」니 하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이러한 어른들의 위선적이고 안일한 자세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체의식에 대한 교육만 해도 그렇다. 그들에게 우리 문화나 전통사상은 관심있게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지나친 외래 사상에 대한 경도와 외국 언어에 대한 교육열은 학교마다 붙어 있는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일본 문화에 대한 지나친 친절은 민족자존을 부르짖었던 선열들에게 우리들을 지조없는 후손으로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물론 이미 세계는 지구촌이라고 할 만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국제화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국제화가 싫다거나 거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 시대 조류로 보아서도 대국주의나 국수주의가 있을 수도 없다. 다만 그 국제화가 몰고 오는 여러가지 여과가 문제시되는 것이다.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지는 민족문화에 대한 경시풍조와 주체적인 사고의 마비, 사대주의적 편향주의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이젠 3월. 따뜻한 양지에 움이 트는 약동의 계절, 청소년들의 천진한 얼굴이 그 새싹의 이미지와 함께 비쳐진다. 새싹이 봄을 만나듯이 그들이 끊임없이 높고도 아름다운 이상과 학문을 만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기대만 하지말고 그 희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드높은 이상과 당당한 주체의식을 가진 나라의 기둥이 되도록-참되고 자랑스런 만남의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저 3월의 하늘처럼 맑고 푸른 민족정기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