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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해인 창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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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법어 - 일타 1985년 03월 37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읍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모든 인간이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할 양심의 소리입니다. 불교에는 방대한 분량의 교리적 체계가 있읍니다.
이것은 인간의 고통과 집착의 세계가 끝이 없으므로 그 고통을 해소시키기 위해 베푸신 부처님의 진리의 양약도 그만큼 방대하게 나타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민족과 역사, 지역과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정신과 생활의 다양성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기록과 전달의 기능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대 언어철학의 이론은 언어와 문자가 인간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산물이면서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규정하는 존재의 창조적인 힘의 원천임을 지적하고 있읍니다.
전통적인 선종사의 가르침은 진리의 참된 실상은 인간의 언어와 사유에 의해서 제약될 수 없음을 누누히 강조해 왔읍니다. 이러한 선종의 언어초월적인 입장은 흔히 많은 불교도에 의해서 언어부정적이며 역사의 현장에 대한 도외시의 방향에서 잘못 해석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종의 언어초월적인 입장은 언어의 상대적인 한계에 대한 지적일 뿐 언어가 갖는 창조적인 역능과, 언어라는 방편을 통해 불지견(不知見)을 개현해야 한다는 일대사인연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오늘날의 급변하는 사회현실은 장경각에 갇혀 사장되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 시대를 건져낼 살아있는 진리의 언어로 살려낼 것을 시급히 요청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 시대 중생의 가슴속에 구체적인 생명력으로 살아 있도록, 말씀을 펴는 전법자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으며,이러한 전법행이야말로 불타께서 부촉하신 보살행의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이 있읍니다. 불교의 교리나 선수행의 깨달음이 교학자의 수중이나 납자의 좌복 위에만 존재한다면 불교는 이미 역사 속에 생동하는 종교가 아니라 영적 신비라는 좁은 영역으로 떨어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새겨 모신 것도 불교의 대중화에 그 목적이 있있읍니다. 우리 선인들의 예지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건만 우리는 오랫동안 망각해 왔을 따름입니다.
젊은 승려들의 참신한 감각으로 문서포교가 활발해짐은 민족이나 불교를 위해 축복할 일입니다.
영상매체로 앞서가는 사회보다는 늦은 감이 있지만 언어매체를 통한 불교대중화는 산중과 도시를 가릴 때가 아닙니다.
서로가 관심을 기을이고 공동체의식으로 일을 나누어 갖도록 합시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부처님
의 법 정신을 불어 넣도록 합시다. 그것이 참다운 법공양의 뜻입니다.
해인지가 더 힘차고 크게 법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