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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술의 세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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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 취영 1985년 01월 35호
불교회화 : 단청(丹靑)의 미적 (美的) 고찰
단청이란 말은 색체가 있는 불교 그림 전부를 말하거나 불교 외(外)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이나 유교의 문묘(文廟)나 사당의 건물 안밖의 그럼과 색채로 단장한 이 전부를 단청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므로 불교의 후불탱화나 천정화(天井畵) 사원 건물의 벽화 등 불교의 모든 그림을 단청이라고 불러왔지만 오늘날 단청이라고 하면 협의(俠意)의 의미로 사찰의 외벽이나 기둥 석가래 같은 곳에 일정한 문양(文樣)이나 그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단청의 가장 오래된 유례(遺禮)는 고구려 벽화고분(壁畵古墳)에서 나타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주제내용에 관계없이 도안화(圖案化) 각종 무늬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들이 일정한 질서와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단청은 이미 상당히 발전된 수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고구려의 쌍영총을 비롯한 여러 고분벽화와 신라의 안압지 유물에서 보이는 단청은 섬세하고 아름다웠을 것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고려시대의 단청의 예(例)로는 영주(榮州)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租師堂)과 안동(安東)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極樂殿)의 단청인데 내부의 단청은 고상하고 화려했던 당시의 불교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단청이 록색(綠色)과 청색(靑色)의 찬색을 조화시켜 매우 은근하면서 점잖은 것이 특색이라면 조선시대에는 황색 계통의 따뜻한 색깔과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무늬의 구성과 창식의 구성이 매우 복잡하였으며 다채로운 색채로 대비하여 극히 화려하게 처리되었던 것이다.
단청의 무늬에는 크게 모루초, 별지화(別枝畵), 비단무늬, 천정무늬 등으로 나누며 모루초 무늬는 평방(平妨) 창방(昌妨) 도리(道里) 대들보(大桐)의 끝 부분이나 모서리에 그리는 무늬이며 주로 연꽃, 방울꽃, 고기비늘, 석류무늬 등을 그리며 차츰 시대가 내려오면서 기둥 머리에 그리면 주의초(柱衣草) 서까래 끝에 그리면 「연등초」 부연 끝에 그리면 「부연초」라 불렀다. 모루초 무늬는 시대와 건물 빛 도안가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화록(花綠)무늬, 연꽃무늬, 방울무늬를 순서로 배열한 다음 고기비늘 같은 무늬를 붙인 것이 기본 형식이다. 이 무늬 요소 중에서 화록무늬, 연꽃무늬, 석류무늬, 방울무늬의 구성은 고려시대 이후에 완만하게 변천 하였다. 그러나 고기비늘무늬 부분은 17세기 초부터 l8세기, 19세기에 더욱 더 화려하게 나타나 모두 초 무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발전되어 모루초 무늬 하나만 가지고도 그 그려진 연대중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단청 문양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모루초 문양이며 그러므로 가장 흔하게 그리는 단청이다.

별지화(別枝畵)는 보편적으로 양끝에는 모루초를 놓고 중간 공백에다 그리는 그림을 별지화라고 하는데 다분히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린 장식화이다.
용(龍), 기련, 말, 사자 학 등 상서로운 짐승과 매화, 국화, 란, 죽 등 사군자(四君子)나 경전에 나오는 장면과 신선과 비천상을 그리거나 역대의 고승을 그릴 때도 있다.
비단무늬는 흔히 금단청(錦丹靑)이라 하는데 아주 화려하게 채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금색과 은색 등으로 기하학적인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며 천정무늬는 우물 천정에 특별히 아름답게 그리는 여러 아름다운 모양을 말한다. 천정회화로는 보상화문(寶相花文)이나 연화문 등을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그렸다.
단청을 이루는 색채는 대체로 외광(外光)을 강하게 받는 기둥은 흙은 색을 철하고 그늘진 추녀나 천정 부분에는 록청색(綠靑色)으로 처리하여 장식의 명도(明度)를 높였다. 이러한 색채 처리 방법은 고려시대의 것으로써 위에는 대체로 푸르고 아래에는 대체로 붉게 칠해졌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그 빛이 다양해져 색조는 붉은색과 주홍 양청(洋育) 황색과 양록(洋綠), 석간주(石間朱) 등이며 여기에다 흰색과 검은색을 서로 서로 혼합하여 사이색을 많이 사용하여 더욱 다양하고 화려한 빛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조에는 단청만을 전문으로 하는 화승이 많이 있었으며 아울러 불화 제작을 같이 하였으므로 극히 찬란한 불교미술을 남길 수 있었는데 비해 오늘날에 와서는 몇 분의 화승 외에는 그 전통의 맥이 끊어지고 있는 데 뜻있는 분들의 계승이 아쉬운 실정이다.

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불교가 아무리 많은 숫자를 나열하고 팔만장경이 산간에 가득 쌓여 있을지라도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신음소리가운데 있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슬픈 허장성세에 다름아닌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 새로운 날의 잔치가 시작되었어도 우리불교가 즐길 판은 보이지 않고 젯상에 올릴 과일이며 떡 또한 변변치 않다. 온갖 잡귀신 소리 드높고 먼지 자욱히 일으켜도 제어할 힘이 없다. 뿌리 비록 깊다하여도 하늘 바칠 가지 부실하니, 달밤에 눈물 흘린다고 어울릴 풍경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벽력치듯 단단히 알아야겠다. 모순은 결국 내적인 것이다. 우리불교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밖의 도깨비보다도 오히려 자기 안방 깊숙히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도 살펴봐야 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문제를 찾고 있을 때 도적은 더욱 교묘하고 어엿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불교를 더 큰소리로 외칠 것이고 더 현란하게 희롱하는 것은 아닌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어설픈 어우러짐과 부추김보다는 오히려 더 치열하게 분리하고 경계하는 것이 시급하지 않은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입장에 서서 철저히 자기부정과 변혁을 이루지 않는다면 우리 한국불교는 앞으로 엄습할 거센 한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존재냐 소멸이냐의 절박한 명제 앞에 해답할 길은 달리 없다. 오늘 이 땅의 역사와 민족과 민중의 요청 앞에 뜨겁게 응답하는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 가운데서 새로운 자기형식과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우리불교가 걸어온 그 낯익은 산과 강과 구름을 열심히 맨발로 헤쳐나가다 보면 이른 바 민족문제와 불교문제, 민중현실과 불교현실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이 온갖 모순이 통일되는 자리가 바로 불국정토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 불국세계는 저 먼 서방의 땅이 아닌 바로 이 땅의 민족통일과 민족,민중의 해탈이 실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불교는 그 유래없는 대파국의 국면에 처해 있다. 내외적인 모순의 와중에서 주체적인 응전력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도리가 없는 상황가운데 있다. 이 땅의 진정한 민족의 종교, 민중의 보금자리일 수 밖에 없는 우리불교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안으로는 전근대적인 보수 봉건적인 비역사적인 구태가 그것이요, 밖으로는 지난해 초파일을 전후하여 한국불교에 대한 일대 침략을 감행한 로마 카톨릭과 그와 한 무리인 매판기독교 일체의 매판적 외래문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저들 세계 기득계급의 대부요 문화적 제국주의 패권주의자들과 동조한 세력 또한 우리들의 문책해야 할 대상이며 교과서 왜곡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과의 문제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제이다. 이 싯점에서 어떠한 고급 유화혼도 또한 배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