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의 해, 새날이 밝아 왔다. 태양은 언제나 온누리에 음양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빛을 던진다.
이 해에는 구석구석 쏟아지는 햇살처럼 우리 삶의 터전에도 인간이 서로를 위하는 온정이 따스하게 스며들었으면 한다. 음양이 조화롭게 세계를 짜가듯 우등생과 열등생 모두가 함께 이어가는 역사, 어떤 이유에서든지 개인이 사회속에서 기능의 우열로 소외 받아서는 않되겠다.
프랑스의 국민학교 상벌제도를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우리나라 학교제도에서는 우등생은 당연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물을 것도 없이 상을 받는 학생은 품행이 단정하고 타의 모범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쪽 나라에서는 우등생이 한 둘이 아니고 각자 능력과 개성에 맞춰 성실 근면함에 따라서 학급 전체가 우등생이 되어 상을 받고 있다. 유리창을 잘 닦는 학생, 쓰레기를 잘 줍는 학생들에게서부터 화초를 잘 기르는 학생들이 상을 받고 밝게 웃는 모습에서 한나라의 성실하고 밝은 내일을 읽을 수 있다.
어떤 곳에서든지 성실하고 근면하게 사는 사람이 의욕을 상실치 않고 복되게 살수 있는 풍토일 때 그 나라 민족은 희망적일 수 있다. 유태인의 격언 가운데 “딴 사람보다 탁월해지려고 덤비지 말고 보다 개성적인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말이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승리지상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일등을 하는 자들에게만 박수를 치고 있다. 특히 체육부분에서 이런 풍조가 팽배되어 있는 것 같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기능공을 너무 추겨 세워서 전인적인 인간을 퇴화시키는 기능주의의 추세는 많은 가치를 혼란시키고 있다. 인간 삶의 가치는 어째든 한방 잘 먹이어 상대를 꺼꾸뜨려 챔피언이 되는 권투에서처럼 올림픽의 금메달들이 부(富)의 신기루로 등장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정이다.
물론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영광의 권좌를 누리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을 우리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화려한 우등생 뒤에 그늘져 좌절하는 또 다른 인간의 아픔을 생각해 보자. 그들에게도 온정한 시혜(施惠)를 베풀어 다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겠다.
우승자에게만 편재되는 부(富)와 명예가 아니라, 박수가 전체에게 확대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팽배한 기능주의, 과대한 부(富)의 물질적 폭력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삶의 풍요를 누리는 맑은 세계가 되도록 하자.
* 편집자 주*
새해부터는 「해인칼럼」란을 「죽비(竹算)의 소리」로 제목을 바꿉니다. 내용상의 성격은 같으나 「컬럼」이라는 외국 말을 불교전문 용어인 「죽비」로 고쳐 쓰기로 했읍니다. 「죽비」는 법구(法具)로서 직경 l촌 5푼쯤 되는 나무를 길이의 3분의 2쯤 가운데를 타서 두 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3분의 1은 그대로 두어 자루를 만든 것. 이것을 자루는 바른 손에 쥐고 갈라진 부분을 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참선방 대중의 좌·립(坐·立)을 지도하거나 경책(警責)할 때 쓰인다. 여기서는 물론 지도와 경책의 의미를 빌려서 우리 자신을 맑히고 스스로를 꾸짖어서 불자(佛子)된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