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근본불교의 존재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아함경역해 - 법성 1985년 01월 35호
둘째, 일체경 (一切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생문(生聞) 바라문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인사한 뒤에 한쪽에 물러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마타시여, 이른바 일체(一切)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곧 눈(眼)과 빛깔(色),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몸(身)과 닿음(觸), 뜻(意)과 법(法)이니, 이것을 일체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이것은 일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사문 고오타마가 말하는 일체를 버리고 따로 다른 일체를 세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만 있는 것이니 물어보면 알지 못하여 그 의혹만 더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참으로 있는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에 생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권 13>

<해설>
잡아함 오온경(五蘊經)에서 우리는 있는 바 온갖 것이 의식과 존재(色心二法)의 무애연기(無碍緣起)속에서 규정되어 가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온설에 의하면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세간(現實世間)에는 그것을 초월한 선험적인 실재를 가상할 수도 없으며(破轉變), 또한 사물 사물에 독립적인 고유의 자성이 인정될 수도 없는(破積聚) 것입니다.
아함경에 나타난 불타 근본교설에서는 오온설과 같은 의식과 존재의 연기구조를 밝히는 일련의 법체계가 있으니, 십이처(十二處), 실팔계설(十八界說)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온, 처, 계(蘊,處,界) 삼과설(三科說)은 일부 학자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세가지 교설이 차례차례로 그리고 따로따로 설해진 것(次第法相)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중생의 망집의 유형에 따라 달리 설해졌을 뿐(隨宣性), 모두 색심이법(色心二法)의 연기중도(緣起中道)를 밝힌(一味性) 교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혜보살(安慧菩薩)은 광오온론(廣五蘊論)에서 온,처,계 삼과설이 설해진 이유를 첫째 온갖 법에 독립된 자성이 있다는 집착을 깨뜨리고(破一性我執), 둘째 행위(業)의 원인과 결과에 자성이 있다는 집착을 깨뜨리기(破作者我執, 受者我執) 위함이라고 설파하셨습니다,.
다만 오온설은 의식에 치우쳐 일으키는 아집을 깨기 위해 의식을 중심으로 설명한 교설(開色合色)이며 반대로 십이처설은 존재를 중심으로 설명한 교설(開色合心)이며 십팔계설은 의식과 존재를 동시에 열어 설명한 교설(色心俱開)인 것입니다.(天台, 法界次第初門 및 賢音, 般若心經疏 참조)
본경에서 생명의 포괄적인 범주(一切)로 제시하고 있는 십이처(六入處:主觀 外入處:客觀)의 처(인yatama:구역入)는 거둬들임(涉入)과 길러냄(生長)의 두 가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 뜻은 주관적인 육근(六根)과 객관적인 육경(六境)이 구체적인 여섯가지 인식작용(六識)을 일으키고 거둬들이는 곳(生長門, 出生處)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단 六根은 제8아뢰야식의 見分으로 諸八識 전부를 포괄함)
다시말하면 의식과 존재.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님(色心不二, 內外不二)으로 우리들의 앎(識)은 이루어지는 것이니, 주관과 개관은 무자성(空)의 근저(體)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 주고 있는(用), 생성의 존재(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정신을 객관에 선행시키려는 관념론(觀念論)의 입장도, 객관적인 존재를 주관에 선행시키려는 실재론(實在論)의 입장도 십이처설이 드러내는 연기중도에 부합되지 못한 이론인 것입니다.
또한 십이처설에 의하면 인간존재(自我:六根)는 역사와 사회(六境)에 의해서 규정되지만(非自作), 역사와 사회를 동시에 규정해 가는(非他作) 상황내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존재는 역사와 사회속에 소외됨이 없이(非自他作:緣成無性), 자신의 존재를 대자유의 인격(佛)으로, 그리고 역사와 사회를 진리의 세계(淨土)로 형성해가는 창조적인 행위(非無因作:本業)의 주체(菩薩)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세계창조와 역사창조의 중심은 바로 우리들 현실 경험세간(十二處)의 열려진 지평(眞諦)인 것이니 그것을 본경에서는 십이처 밖에 그 무엇도 참으로 있는 경계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다시 주관 객관이 서로 단절되지 않는 하나의 장(제8아외야식의 自證分)속에서 서로반응하고 규정하는 관계(見相二分의 상호규정)을 통해, 우주만유의 생성 되어감(萬法唯識)을 다음같이 설하고 계십니다.

能緣所緣力 種種法出生
速滅不誓停 念念悉如是
인식하고 인식되는 힘에 의해서
갖가지 온갖 법이 생겨나도다
생겨서는 바로 멸해 머뭄없나니
생각생각 모두 다 이와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