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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으로 총선·지자제선거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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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0년 08월 102호
끝내 파국으로 치달은 국회
지난 제150회 임시국회에서 여당인 민자당은 방송관계법, 국군조직법, 광주보상법 등 쟁점법안을 포함, 26개 법률안을 단독으로 변칙 통과시켰다. 야당과 국민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여러 법안을 무리하게 강행 통과시킴으로써 이후 정국은 야권의원 전원의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긴장 상태 를 낳게 되었다.
당초 이번 국회는 정부·여당의 국군조직법 둥의 ‘회기내 처리’와 평민당의 정당추천제 허용, 지자제법 통과 없이는 타 법안의 타협불가 ‘강력저지’의 입장을 천명한 바 충돌이 예고된 것이었다. 회기초 상임위원장직 배분이 매끄럽게 타결되어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듯도 했지만, 7월 11일 상임위에서의 ‘날치기통과’가 강행되면서 여 ·야의 극한적인 대립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폭언·몸싸움을 넘어 피를 보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민과 여론은 이런 국회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12, 13일 문화방송(MBC)·한국방송공사(KBS)·기독교방송(CBS)·평화방송(PBC) 노조는 방송관련 3개법안 상임위 통과에 항의하고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4개방송 동시 전면 제작거부를 결의하게 된다.
그리고 13일에는 민주당의 김정길 ·이철 ·노무현, 평민당의 이해찬의원이 ‘국회가 반민주악법만 양산하는 통법부(通法府)에 불과하다’며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13대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여 ·야의원 모두가 의원직을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함으로써 날치기 통과 국회는 심각성을 더해가 고 있었다.
거대여당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여 안팎으로 위용을 증명하고자 초조한 민자당은 소장의원 4인의 의원직 사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다음날 불과 30초만에 26개 법안을 뚝딱 해치우고 만다. 의장이 본회의장 입장을 시도하는 ‘교란전술’을 쓰는 사이 부의장이 연단이 아닌 통로에서 민자당의원에 둘러싸인 채 전격적으로 통과시키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성공시
킨 것이다. 이에 발끈한 평민 ·민주야당의원 전원은 그날로 즉각 사퇴서를 쓰게 된다.
한편, 야권의 의원직 총사태 정국은 야권통합을 급속히 전개시킨다. 벼랑끝에 내몰린 두 야당 총재는 18일 회담을 갖고 두 당과 재야의 통합을 합의하고, 이틀 뒤에는 ‘범민주통합 수권정당 촉구를 위한 추진회의(통추회의)’ 대표 김관석 목사와 함께 3자통합을 결의하기에 이른다. 통합결의 다음날, 두 당과 ‘민중기본권쟁취 및 민자당 일당독재분쇄 국민연합(국민연합)’ 등 재야는 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수십만이 운집한 가운데 ‘민자당 폭거규탄과 의원직사퇴선언 및 총선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13대 국회해산, 총선 ·지자제선거 동시실시를 위한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날 집회를 통해 일정 정도 자신감을 가진 야권의원들은 23일 예정대로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게 된다.

파국의 씨앗은 장기 집권을 위한 3당합당
한때 황금분할로 얘기되던 4당체제의 13대 국회가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이 시점에서 야권의원들은 왜 국회를 뛰쳐나가야만 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어느 날 갑자기 3당 총재가 밀실에서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짜고 합당을 전격 선언, 민자당을 급속히 창당하여 장기집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 구도를 무리에게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노태우씨는 36%의 저조한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이후 국회의원선거에서 자당인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의 확보에도 실패함으로써 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국민과 야당의 5공청산·광주문제의 규명요구 투쟁은 6공화국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작년 하반기부터는 3김씨의 차기 대권야망에 따른 야당간의 상호 견제 ·경쟁의 틈을 비집고 교묘한 통치를 통해 제도정치권에서는 과거문제로부터 일정한 굴레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자 이제 집권충의 주요관심사는 계속적인 집권에 모아졌다. 결론은 야당세력의 일부나마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확보할 필요가 절실했다. 또 내각제개헌이 필요했다. 내각제야말로 장기집권을 보장해 주는 안전판이며, 일부나마 권력을 나눠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 듯하다. 야당 또한 3당으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독자적인 힘으로 차기 대권을 잡는 다는 것은 매우 난망한 일이었다. 이러한 여 ·야의 현실에서 권력을 나눠먹기로 하고 나온 것이 3당 합당의 본질임도 대부분의 국민은 다 안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업으로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자화자찬을 하지만, 합당후 보여 준 것이라고는 추잡한 권력싸움뿐이었는데서도 증명되고 있다.
더욱이 다소나마 국민의 뜻을 반영했던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이 합당 후 유명무실하게 되고, 평민당이 그토록 목매달았던 지자제실시마저 정당추천제허용 합의를 깨고 불허 방침으로 돌변시켜 사실상 지자제실시를 실종시키기에 이르렀다. 물가는 근년에 보기 드물게 뛰고 있으며, 집값의 폭동은 모든 서민의 생활을 압박시켜, 적지않은 사람의 죽음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했다. 증권은 폭락하고, 정부여당의 전매특허인양 하던 민생치안은 한낱 구호가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차기권력을 잡기 위한 분쟁만 계속했다. 과반수의석도 확보하지 못했던 여당이 합당으로 졸지에 3분의 2를 훨씬 넘는 거대 공룡|이 됨으로써 민자당내 주도권만 잡으면 다음 대권은 따논 당상이라는 생각, 야당과 재야는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강력한 투쟁의 전개는 어려우리라는 오만, 국내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북방정책과 남북한 문제로 압도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등이 혼합되어 국민을 깔보는 정치로 일관했다. 물론 이질적인 체질이 하루아침에 화합되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겠으나, 본질적으로 각 계파는 대권이라는 유일무이한 목표 때문에 모인 것이므로 이 부분에 관련해서는 촌보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이 민자당의 현실이다. 개헌선은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여론의 향배나 야당에게 적당한 명분을 주어 꼴상사납지만 않게 내각제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여당의 확실한 생각인 듯하다. 국민이 보기에는 전혀 시급하지도 않은 국군조직법이나 방송관련법을 무리수를 둬가면서 굳이 통과시켰던 것에서, 이는 내각제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주도의 수순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평민당으로서는 지자제선거를 통한 몇 개 지역의 확실한 발판만 마련하면 차기 총선 ·대선 등에서 대단히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지자제실시라면 중간평가도, 광주·5공문제도 종결짓고, 노정권에 협조해 주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의 비난 여론도 감수해 왔다. 그런데 3당합당 후 노정권은 변했다. 다 합의했던 지자제선거를 정당추천제불허 방침을 밀어붙이면서 사실상 실종시키려 하는 것이다. 합당 후 노태우 대통령파의 회담에서 김총재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총재에게는 벼랑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국민의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김총재는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임시국회가 파행으로 끝나자 이번이 적기라고 생각한 듯하다. 한판승부의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총선·지자제선거 쟁취를
변칙국회 후 여론과 야권의 동향이 예상 수준을 뛰어넘는 반발에 정부여당은 상당한 고심을 한 듯하다. 물론 국회운영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에서 나온 고심이 아니라, 이제 법은 통과되었겠다 무마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국회해산 최총선은 지금 여당에게 절대 불리하다. 때문에 야당이 국회를 깨고 나가서는 안된다) 예상 밖의 반발 폭에 그 치유책도 상당히 파격적인 면이 있다. 그렇다고 전혀 예측못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의 북방정책과 남북문제 카드였다. 18일 김대중 평민당총재와 이기태 민주당총재가 만나 야권통합을 합의하던 그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친서 발표, 20일 야권대표 3인이 만나 통합을 결의하던 날 ‘민족대교류 제의 발표’ 등이 그것이다. 외무부 관계자도 지금 시정에서 왜 그걸 발표해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노대통령 스스로 지난 6월 28일 ‘앞으로 일방적 대북제의는 않겠다’는 공언을 스스로 뒤엎을 뿔만 아니라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한 그런 사안을 왜 그날 내놓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알고 있다. 꽃은 날씨에도 재야와 야당이 공동으로 주최한 21일 보라매 집회에 수십만의 군중이 모여 국회해산, 총선 ·지자제실시를 소리쳤다는 것이 그 반중이다.
어쨌든 노정권은 의원직 사퇴서를 반려한다는 입장을 세워두고 있다. 일정정도 냉각기간을 두면서 파격적인 조치나 선언, 혹은 암시 등으로 국민 여론을 환기하고자 할 것이다. 장외로 뛰쳐 나간 야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지지도를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이 어쩔수 없이 다시 장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적당한 명분을 주어 지금 당장 13대 국회를 깨는 결과는 막고자 하려 할 것이다.
평민·민주당 등 의원직 사퇴 의원은 7월말까지 국회에서 완전 철수하고 8월부터는 세비도 받지 않는다는 등 사뭇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야당에 대한 의
구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야당이야말로 국민 여론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민 분위기가 뜨지 않으면 자기의 기득권을 전면적으로 버리는 길로 일관되게 행동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다시는 야당이 당리당략에 의해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방치해 두어서는 안되겠다. 야권통합의 진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것이어서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의 뜻을 수렴·대변해 줄 독자적인 확고한 세력의 부재 또한 염두 해둘 사항이다. 지난 87년 국민의 힘으로 직선제가 쟁취되었으나 야권의 분열로 호기를 놓친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기 위해서 ‘믿을만한 확실한 국민대변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세력을 중심으로 야당을 늘 국민의 편에서 일탈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 현재는 미약하긴 하지만 ‘국민연합’에 힘을 집중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평민·민주당, 국민연합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비상시국회의’를 강화해야겠다. 비상시국회의의 힘은 지난 21일 보라매 집회가 비상시국회의 주최였다는 데서 그 위력을 감지할 수도 있겠다.
이제 정국은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막바지 본격적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여·야 모두 국민 여론의 향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시 한번 위대한 국민정신을 발휘하여 l0% 안팎의 지지율 밖에 없는 민자당이 국회의석은 74%를 차지하고 있는 모순을 현실화시키자.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실시를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