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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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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민병삼 1990년 08월 102호
우리나라 최남단에서도 뱃길로 이백여 리나 더 떨어진 곳에 용신도(龍身島)라는 섬이 하나 있다. 섬의 생김이 워낙 길쭉하고 해안에 뻗친 너댓 개의 지류가 마치 용의 다리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주민들의 생활구조는 육지와는 일체 단절된 채 모든 것이 원시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문명의 이기라곤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들에겐 오직 해와 달, 구름과 바람, 눈과 비, 그리고 망망한 바다가 전부였다.
그들은 해마다 음력 6월 6일이 되면 촌장(村長)의 관장하에 해신제(海神祭)를 지냈다. 바다 한가운데서 용의 등을 타고 앉은 주민들이 해신에게 지내는 제사였다. 제일을 하루 앞두고부터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마치 용이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듯 멀리서 해일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촌장의 지시에 따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민 삼십 여명이 촌장집뜰로 모이게 된다.
촌장이 대청 끝에다 때가 절고 모서리가 마모된 나무상자 한 개를 내놓았다. 그속에는 마분지를 담뱃갑 크기로 잘라 접은 것을 주민 숫자만큼 넣어두었다. 그 중 딱 한장에다 ‘敵’자를 써놓은 것이있다. 그것을 집는 사람이 바로 그 해의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여기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온 전습이기 때문에 누가 뽑히든 절대 승복해야 했다.
촌장이 일일이 호명하여 빠진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하였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낙들은 아낙들대로 한 구석에 둘러서서 깔깔대거나 수다를 떨어댔고, 남정네들은 그들대로 뱃일이나 농사일을 화제로 삼아 담소를 나눌 만큼 제물에 대해서 전혀 공포감을 갖지 않고 있었다.
촌장이 참석자를 확인한 결과 오직 해돌 어멈이 빠져 있었다.
“장서바앙. 해돌 어멈만 나오질 않았는데, 어찌된 일인고?”
촌장이 옥수수털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해돌 아범을 쏘아보았다.
“곧 올겁니다. 먼저 시작하는게 좋겠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손을 놓고 왔던 터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촌장이 어험, 어험 하면서 앞으로 나서더니 상자를 두어번 흔들었다.
“얼굴을 하늘에 두고, 손만 이 구멍에 넣는 것을 잊지 말도록.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 종이를 펴지 않는 것두 명심해.”
촌장이 목청을 높여 요령을 재차 강조하였다.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그리곤 촌장의 명대로 얼굴을 하늘로 쳐든 채 눈을 깜작거리며 손목만 겨우 들어갈 상자구멍에 손을 넣었다.
해돌 어멈만 빠진 채 모두가 마분지 쪼가리 한 개씩을 뽑아들었다. 그제서야 해돌 어멈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뭐하고 이제 와?”
해돌 아범이 얼굴을 사납게 구겨 아내에게 화를 버럭 내었다.
“여물을 끓이다 말고, 어떻게 그냥 와요.”
해돌 어멈이 낯을 붉혀 한참 해명을 하였다.
“여물은 무신 여물? 육지 남정네랑 수작부리다가 온 궁등이구만.”
덕만 어멈이 핀잔 겸해서 농을 넣자 여자들 모두가 한참동안 키들대었다.
“해돌 어멈. 한 장이 남았을테니, 어서 뽑아 얼굴을 하늘로 쳐 들고.”
촌장이 노여운 눈빛을 뿌렸다. 해돌 어멈이 손으로 가쁜 숨을 쓸어내리면서 상자에 손을 찔렀다.
“그러문, 종이를 모두 펴.”
촌장의 명이 떨어지자, 일제히 입을 봉한 채 빠실빠실 종이를 폈다.
“글짜 쓴 것을 누가 가졌는고?”
촌장이 고개를 휘 돌렸다.
“제 첩니다, 촌장님.”
해돌 아범이 아내로부터 종이를 빼앗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덕만 어멈을 비롯해서 아낙들 모두가 손빽을 쳐댔다.
“됐다, 잉. 이녁을 묶어.”
촌장이 또 한번 목청을 높이곤 안으로 사라졌다.
해돌 아범을 비롯해서 사내들 서넷이 달려들어 해돌 어멈을 오리나무 기둥에다 꽁꽁 묶었다. 밤새, 도주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리곤 그녀 얼굴에 자루를 용수처럼 푹 씌우는 것이었다.
아낙들이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혀를 차면서 하나 둘 흩어졌다.
“안돼요 이건 공명치 못하다구요.”
해돌 어멈이 돌연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다.
“뭣이 공평치 못해? 별, 미친년 ……”
덕만 어멈이 몸을 돌려 그녀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덕만이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해돌 어멈이 자루 속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뭘 어쨌어.”
“덕만이네는 나처럼 안될 줄 알어 ?”
“미친년. 나처럼 제비를 잘 뽑아봐.”
“공명치 못해. 다시 해야 돼.”
그러자 해돌 아범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
“조용히 못해 ? 어차피 당신이 뽑힌거야.”
해돌 아범이 그녀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공명치 못해요. 나 없는 새에 즈이들끼리 껍데기만 뽑아가고, 그것 한 장만 남겨두었잖아요. 그런 비열한 짓이 어디 있어요. 정말, 공명치 못하다구요.”
해돌 어멈이 끊임없이 발악하였다.
“정말 조용히 못하겠어? 촌장님 노하시는걸 보구 싶어서 그래?”
해돌 아범이 안채를 힐끔거리면서 소리를 죽여 그녀에게 이를 드윽득 갈았다.
“다시 해요. 억울하다구요.”
“이봐아. 작년에두 그랬어. 일출에미도 당신처럼 그랬다구.”
“그땐, 세 사람이나 있었어요.”
“오십보 백보야.”
“정말 나쁜 사람들예요. 어쩜, 자기들 뽑히지 않은 것만 좋아해요?”
‘사람이 본래 그래. 남 잘못되는 거 보구서, 자기 다행으로 여기는 거라구. 용신도에 사는 한은 결국, 우리 모두 죽어. 한 해 먼저 갈 뿐야.”
“그래두, 난 억울해요.”
“시끄러워, 병신아. 누가 늦게 오랬어?”
해돌 아범은 주먹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재차 쥐어박고는 다른 사내들을 따라 총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