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을 생각하는 이여
그대가 보내온 편지에 쓰여진 〈입산이 산에 들어가 산 밖의 것들과 단절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혹스러워 했던 부분을 읽으며 단절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고독의 시간을 요구하는지 그대도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단절은 인간에게 영원히 동행해서는 안될 깊은 늪과 같습니다. 산에 들어가 산 밖의 것들을 단절하려고 했을 때, 그대는 또 하나의 단절의 늪에 빠져 산에 들어 왔다는 사실을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생의 정수를 찾아보기 위해 입산해야겠다는 그대의 결심은 많은 반복을 거듭해야만 될 것입니다.
입산은 결코 자기와 밀착되어 왔던 것들을 단절하려 하는 것이라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더욱 진한 밀착을 위해 분석하고 바라보는 시간이라 기억해야 합니다. 단절이 입산의 본질과는 한 세계에 함유되지 못함을 생각하며 입산은 방랑의 일부라고 했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립니다. 정말 입산은 희미한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은 방랑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에 무엇인가 많은 것을 남기려 합니다. 입산을 통하여 인간이 자기가 살았던 세상에 무엇인가 많은 것을 남기려 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허무로 가득찬 생의 방랑임을 그대로 금방 알게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합니다.
입산이 인간의 어느 행위보다 절은 경험의 세계를 열어주어서 비록 생을 엮어 가는 데 큰 바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대는 입산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신비스럽거나 아름다운 것으로만 인식하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입산은 신비스럽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말로는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넓고 깊은 안온함을 가지고도 있지만 고독한 고행의 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고독한 행위의 길을 지나면 법열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입산을 말하는 많은 언어보다 입산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내가 입산하던 산길에 쌓여있는 낙엽지는 소리들을 모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의 시간입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