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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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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수상 - 현진 1990년 08월 102호
간밤엔 기왓골을 타고 떨어지는 빗소리에 놀라 여러 번 선잠이 들곤 했는데 비가 그치고 모처럼 햇살이 찾아왔다.
며칠 계속된 비로 인해 후줄근하던 수목이나 무거운 습기로 가득 차 있던 숲이 오랜만에 생기를 찾은듯 되살아 나고 있다. 산중에 내리는 청일(晴日)이 녹녹하던 기분을 금새 환하게 맑혀주고 저조하던 옴을 가뿐하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지대방에 모인 도반들의 정담이 시들하던 우일(雨日) 때와는 달리 힘이 있어 보인다. 역시 산중에선 모두들 날씨에 민감하게 반웅하는 모양이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지. 세상의 모를 일이 고양이 눈동자와 여인의 마음, 그리고 오뉴월 구름빛이라고. 그래서 날씨를 짐작하기 어려운 장마철엔 무슨 일이건 후딱 해치워야 한다. 우선 뒷뜰을 가로질러 길다랗게 빨랫줄을 걸치고 그동안 벗어두었던 옷가지를 말끔히 씻어 널었다. 작년이었던가. 비에 젖은 무명옷을 며칠 놓아두었더니 곰팡이가 허옇게 피고 말았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난 뒤로는 빨랫감을 미뤄두면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하고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이런 날 훌훌 털어 빨랫줄에 널고 나면 속이 후련해 오고 새삼스레 산다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웬지 빨래하는 일이 힘들지 않고 그 자체가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건 아마도 지금껏 길들여졌던 대질서로 돌아갔기 때문일 게다. 결국 우리네 삶을 기쁘게 하고 넉넉하게 하는 건 거창한데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생활의 질서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소박하게 배여 온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한 셈이다.
한차례 장마가 지나고 나면 손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먼저 눈에 거슬리는 게 그새 불쑥 자라버린 잡초들이다. 이건 자생력이 강해 어디든 뿌리를 내린다. 관음전 지붕에도 듬성듬성 나 있어 아랫반 스님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이번 비에 몇장 남았던 장미는 다 떨어지고 의외로 잎이 부러지거나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던 파초(芭蕉)가 윤기나게 자라고 있었다. 보잘것 없는 화초에 비해 장미는 아름답긴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쉽게 망가지고 마는가 보다.
후원채에선 이불을 꺼내어 담장에 걸치고 인부들은 모기의 서식을 막기 위해 웅덩이를 파헤친다. 그리고 정낭(淨廊)에다 특유의 악취를 제거시키고 모기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거푸짚을 넣어 주는 작업도 오늘 같은 날 해준다. 해인사 변소는 아래가 아득할 정도로 깊은 걸로 소문나 있어 가끔 관광객들이 코를 막고 들여다 보기도 한다. 이제 그 뒤켠에다 새 화장실을 짓고 있으니 모두에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대중 모두가 움직이는 운력(運役)이 있으면 으레히 차담(茶談)이 준비되는데 다각(茶角) 소임을 보는 스님이 국수를 준비하였다. 절집 안에선 국수는 별미로 통하고 승소(僧笑)라 부르기도 한다. 환하게 웃을 정도로 국수를 다들 좋아하기 때문이다. 땀 흘린 뒤 먹은 탓인지 오늘 국수는 새로운 미각이었다.
국수에 얽힌 일화 한 토막.
이뭣고 스님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효봉(曉峰)스님과 석두(石頭)스님이 어느 날 마주 앉아 국수를 들게 되었다. 효봉스님이 스승 석두스님께 넌지시 물었단다.
“스님, 국수를 드실 때도 화두(話頭)가 되십니까?”
“이놈아 옆에 있는 사람도 안보이는데 화두가 다 무엇이냐?”
그래서 승소라 했는가. 아무튼 누구나 좋아하는 국수는 자칫 떨어지기 쉬운 여름날의 입맛을 돋구는 게 사실이다. 내일부터 또 빗줄기가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지리한 우일 끝에 나타난 햇살에 내 뜰은 모처럼 생기를 얻을 수 있었다.
가만히 보면 우리네 마음은 환경에 따라 천층만층으로 나타난다. 대상은 늘 그대로 다가오는데 시비(是非)는 언제나 마음장난에 놀아난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것을. 그래서 외부의 조건이나 물질로 욕망을 채우려면 늘상 허덕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한 생각 놓는 일부터 배우자.
며칠 전 일이다.웬일인지 그날 밤은 통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하루의 수행과정은 대개 육체적인 피로를 동반하기 마련. 그래서 언제나 자리에 눕자마자 잠드는 게 지금껏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잠을 청하려 하면 할수록 의식은 점점 또렷해 오는 기분이었다. 깊어가는 삼경에 마음은 자꾸 초조해지고 몇번 뒤척이다 시간을 확인하면 그저 조금 지났을 뿐이었다.

不寐夜長 잠 못드는 자에겐 밤은 길고
疲捲道長 지친 자에게는 지척도 천리
愚生死長 어리석은 자에게는 생사는 계속되어
莫知正法 바른 진리를 얻지 못하리

부처님의 말씀도 때로는 경험을 거치지 않으면 내것으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그날 밤 이 경구(經句)를 몇번이나 실감하며 내것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몇차례 시도해 봤지만 오히려 짜증만 동반되고 번번히 실패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날 밤 ‘자야겠다’는 초조한 생각, 그것이 결국 집착이 되어 내 잠을 방해한 셈이었다. 마치 비누거품을 없애려고 손을 저으면 저을수록 거세어지는 것처럼.
나중에는 시계소리마저 거슬릴 정도로 내 스스로 경계의 노예가 되어 여유를 잃어 버리기까지 했다. 여유로울 때 우리는 너그럽지만 그렇지 않으면 졸렬한 사람이 되기 쉽다.
진정 자신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넓다란 여유가 생겨나는 것이리라. 참으로 넉넉한 공간, 이것은 밖으로만 향하던 눈을 안으로 거두어들일 때 만나게 되는 삶의 여백이며 지혜이다.
이처럼 우리는 경험을 통해 내 아집과 편견, 그리고 고정된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는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