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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三寶)전에 바치는 깨끗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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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역해 - 법성 1984년 10월 32호
사불괴정경(四不壞淨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이」국「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 세존(世尊)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세상 사람들에게 슬피 여기는 마음(哀愍心)과 자비로운 마음(慧悲心)을 일으켜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너희들의 말을 기꺼이 듣고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그들을 위해 네가지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四不壞裡)을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깨끗한 믿음에 들어가 머물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것이 네가지인가 부처님(佛)에 대한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과 법(法)과 승가(僧)에 대한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과 거룩한 계율(聖꿨)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믿도록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질을 구성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는 비록 변함이 있으며 더하고 덜함이 있을지라도 이 네가지에 대한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은 일찌기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변하여 달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저와 같이 더하고 덜함이 없고 달라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한 사람을, 많이들은 여래의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라고 부르는 것이니 부처님에 대해서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면 결코 지옥 아귀 축생의 나쁜 길 (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반드시 부처님에 대한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승가 그리고 거룩한 계율에 대한 무너짐이 없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리라 또한 마땅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불러 일으켜서 성취케 하리라’고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을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권30)

(해 설)
불교가 제시하는 믿음의 길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초월적인 절대자에서 맹목적인 복종을 가르 치지 않으시고 오직 불법승삼보(佛法僧三보)에서 깨끗한 믿음과 계율(戒律)의 성취가 스스로를 해탈시키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참된 삶의 길이 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웃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삼보에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야말로 구도자의 세상에 대한 연민과 지극한 사랑의 발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비록 본 경전이 중생의 귀의처를 네 곳으로 나누어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가 분리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즉 법(法)은 생명의 존재원리로서의 연기(緣起)와 실천원리로서의 중도(中道)를 설파하신 여래의 교법 (敎法)을 말하는 것이지만 근원적인 의미에서는 교법이 밝혀주는 존재의 참모습(諸法實相) 그 자체인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도, 중도적 삶의 자유를 인격 안에 온전히 이루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법과 하나된 우주의 보편적 인격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승가도 부처님의 교법에 귀의한 구도자의 모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에 국한되어지지 않고 본래 청정한 진리의 세계 자체가 되는 것이며, 계(戒)도 존재의 실상을 실답게 알 때 드러나는 참된삶의 길(八正道) 이 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모든 존재가 연기(緣起 : 現實世間)이므로 공(空 : 緣起의 全備性)한 것이요 공(空)이므로 또한 존재가 새롭게 연기된다고 하는 중도적 세계관으로 살펴본다면 삼보(三보)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연기된 중생의 의지 처임과 동시에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의 성품이며 생명의 창조적 원천이요 기반인 것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본경에서 사대(四大)는 무너져 없어질지라도 삼보에의 귀의는 영원히 무너짐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월적인 절대자에의 맹목적인 신앙에 광분하는 자도 그리고 개아 속에 갇혀진 영혼에의 몰입을 통해 죽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자도 삼보의 진정한 현존(現存)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연기 (緣起)의 현실세간속에서 그대로 무한히 열려진(空) 삶의 진실(中道實相)을 살아가는(無我行) 사람(菩薩, Bo­dhi­sattva)만이 삼보의 영원한 현존을 바라보면서(往相) 세상에 끝없는 대비(大悲)를 실현할 수(還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수보살은 중론송 관여래품에서 세간의 성품(世間性)이 여래의 성품(如來性)이라 하였고 화엄경은 주관과 객관, 의식과 존재의 이원적 단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자만이 여래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다음같이 말씀하셨습니다.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鮮法性 卽見盧舍那
있는 바 온갖 법은 자성없나니
온갖법 이 자성없음 밝게 깨쳐서
법의 성품 실답게 이해한다면
곧바로 부처님을 만나뵘이네.

*편집자 주 : 본 아함경 역해는 근본불교의 신암론·존재론·해탈론·수행론·실전론을 10호에 걸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