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칠보사로 가기 위해 중앙청에서 뻐스를 내리면 인왕(仁旺)과 북악(北岳)이 오누이처럼 정답다. 그리고 근정전(護政嚴)과 경북궁 뜨락에 고아(高雅)하게 나래를 여민 원각사(圓覺寺)의 탑이 가을 햇살에 더욱 옛스럽다.
가을 햇살과 돌담길, 그리고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은행잎을 보면서 가을은 도회(都會)의 뒷골목에도 그 정다운 빛을 속삭이고 있었다.
칠보사(七寶寺)는 삼청동의 후미진 골목이 끝날 즈음에 나타났다. 게시판에는 아이와 어른들을 위한 법회안내가 여럿 붙어있고 법당의 편액과 주련이 모두 한글 궁체로 된 특이한 모습이었는데 글씨의 주인이 바로 이 절에 주석하시는 석주(昔珠) 큰스님의 친필이시다. 스님께서는 청소년 포교에 평생을 애써 오신분이시며 칠보합창단과 중앙승가대학에서 젊은 불자와 호흡을 같이 해 오면서 한국 불교의 젊은 맥박을 뛰게 하시는 분이시다. 언제나 온화하고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드는 스님이시다.
큰스님께서는 평생을 포교에 주력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 편집진은 주로 포교에 대한 것을 여쭈어 보기로 하였다.
큰스님께서는 평소에 포교에 대한, 특히 청소년 포교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열성과 집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선 포교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포교는 불교가 이 땅에 있게 한 근간(根幹)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포교는 부처님 스스로 여러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하여 진리에 목말라하고, 새 삶을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널리 포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은 악에 쉽게 물드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리를 갈구하거든요. 그러므로 새 삶으로 이끌어주는 일이 곧 포교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키고 빛을 향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그러므로 포교의 역사도 불교의 시작과 함께이지요.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분이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위대한 포교사였습니다. 부처님 스스로가 자기의 깨달음올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불교는 이 땅에 없었을 것이니까요. 그 이후 부루나나 목건련도 훌륭한 포교사들이었지요.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길을 깨우쳤으며 그것을 일생을 통해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이후 포교의 역사는 언제부터입니까?
대체로 1900년대로 보고 있지요. 부끄럽게도 일본인에 의해서 도성(都城)의 출입이 허용되고 일본인이 한국에 포교당을 짓고 그러니까 1912년 이후라고 해야 비교적 정확한 것이 될 것입니다. 만해(萬海)스님에 의해 불교 청년회가 만들어지고 민족 독립과 불교 청년 운동이 때를 같이 했지요. 그렇지만 이조에 탄압 받던 풍조가 있어서 쉽게 사회에 포교가 되지는 않았지만 몇몇의 선각(先覺)들의 활동은 대단했지요. 백용성스님께서는 한문 경전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하고 의식(衣式)과 의제(衣制)의 통일, 포교당 건립등… 그밖에도 많이 있지요.
부루나 혼자처럼 어떤 역경에서도 포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할텐데 포교사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기회에 좀 해 주십시요.
우선 포교사 스스로의 몸가짐과 언행이 조촐하고 깨끗해야 되리라고 봐요. 강단에서 말하는 것은 그럴듯한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믿음이 안가지요. 그러므로 자연 수행과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고 옛 사람들을 말씀하신 것 같아요. 깨달음의 깊은 경지에 가지 않더래도 깨끗한 행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여러가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보지요.
현재 포교에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포교할려면 동사섭(同事攝)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관용과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실 너무 절은 딱딱합니다. 누가 불교에 대하여 뭘 질문하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대합니다. 안 그래도 절은 여러 면에서 세속과 전혀 다르므로 세속인들이 가까와질려고 해도 여러 면에서 가까워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들에게 불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고 그들이 가까이 오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리고 도시의 절은 의무적으로 포교하게 하고 포교사를 두어 일정한 포교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포교사를 양성하는 연수원 시설의 확충이 시급합니다. 적어도 도(道) 단위로 하나는 있어야 되리라고 보며 포교당에는 포교에 능력이 있고 관심이 있는 스님을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종교다원화 사회입니다. 앞으로의 불교의 진로(進路)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래도 지금은 포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 같아요. 강원과 종립학교(宗立學校) 학생들 사이에 차츰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퍽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캘럽지 조사 보고에 의하면 불교 인구는 750만이고 문공부 조사보고는 통계가 그보다 많아서 포교를 안하는데 비하면 아직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요. 신라이후부터 선대(先代)이래 불교와 관계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이대로 나가다가는 안됩니다. 40대 이상은 불교가 많지만 앞으로는 청소년 불교 인구가 많아야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러am로 자연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해야 하고 우선 그들에게 여러 면으로 투자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청소년은 미래불교의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고 가을에 거둘 수는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1/10%만 포교 활동해도 앞으로는 낙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포교의 방향을 좀 제시해 주십시요.
조계종단이 목표로 하고 있는 역경(譯經)과 포교와 도제양성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요. 문제는 어떤 계획을 하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해야한다고 봐요. 치밀한 계획의 수립이 없으면 틈이 많아서 말과 같이 실행이 안되지요. 그러니까 신뢰를 할 수 없고 신뢰의 바탕이 없으니 자꾸 다른 사회 계층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고 이젠 신도나 스님들 마저 종단의 정책에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분규는 이젠 없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몇몇 포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포교해도 결국 그런 분규가 사회와, 신문에 알려지면 결국 허사가 되고 말지요. 그러므로 포교는 어떤 개인이나 종단이나 하루 빨리 신뢰를 회복하는데 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곧 종교의 뿌리요 공덕을 지어내는 바탕이니까 참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에 전통 문제와 관련 교과서 왜곡등 사회가 차츰 기독교화 되고 산업화함에 따라 현대는 신라나 고려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이럴 때 포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요.
교과서에서 종교의 문제를 꼭 서구적인 신관(神觀)중심의 사상으로 종교를 소개했다는데 우리 동양의 종교관과는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여러 종교의 방향을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국정 교과서를 배우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의식을 생각할 때 특정 사상이나 종교관을 가르쳐 일방적인 외골수가 되게 하면 결국 객관성이 없는, 논리적 사고(思考)가 결여된 인간을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나는 불교나 기독교나 다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고, 오히려 균형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할 때 국가에서 만든 국정 교과서가 그런 처사를 한데 대하여 퍽 유감을 표합니다. 포교한다는 것은 불교쟁이를 만들자는 말은 아닙니다. 이럴 때 일수록 큰 눈을 가지고 역사와 종교를 바로 볼 필요를 느낍니다. 진리는 늘 보편타당성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중생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리라고 합니다.
장시간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처럼 젊은 불자를 위해 끊임없이 염려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 한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법체 보존하십시요.
큰스님의 방문을 열고 뜰에 나오니 큰 은행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한참 놀이에 취해 있었다. 그 큰 나무와 같은 스님, 자비로운 가을햇살이 나무 가득 내리고 있었다.
대담·편집 /향적, 시명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