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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無我)와 윤회(輪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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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제월 1984년 09월 31호
불교를 일반 사상계와 구별할 수 있는 특성이 실재론적인 사고를 부정하는 연기론의 입장이라면, 윤회설의 실체적 주체는 분명히 비불교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윤회설은 불교도들의 실제 생활의 사고나 행동에 있어서 윤회를 믿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불교도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불교의 중심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윤회설은 원래 인도의 일반 사상계나 민간 신앙의 사상을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수용한 외적 사상이라는 점에서 비불교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수용한 외적 사고나 발전된 형태의 사상이라도 대승이나 선적인 요소는 더 불교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윤회설이 비불교적이라는 것은, 연기나 무아설은 이것이 없으면 불교라고 이름할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이지만, 윤회나 영혼의 사상이 불교 내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없어도 불교는 불교로서 성립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윤회설이란 업(行爲)의 관념과 관련되어서 성립되었고, 인간이 죽고난 뒤에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선악의 업력에 따라 영혼(개아적 실체)이 다른 세계에 윤회 전생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출발은 고(苦)의 실존적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이 세계는 고(一切皆苦)이고, 이 괴로움은 무상(諸行無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의 가합(假合)으로 이루어지며, 항상 변화하여 잠시도 머물지 않는 무상한 것이고,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인데, 이러한 논리로서 객관적인 존재를 본다면 무상이지만, 주관적인 존재에 적용할 때에는 무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색(色)이라는 물질적 존재나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정신적 존재 가운데 어느 것도 자기라고 이름할 수 있는 점은 없다. 인간은 단순히 오온이라는 인과 연이 가합된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아설은 불교의 기본 입장이다. 이러한 무아설과 모순 상치되는 윤회설이 불교 내에서 받아들여지고 보다 더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이 무아와 윤회의 주체가 서로 상반되는 교리적 모순을 조화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두가지 모순되는 교리를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무아설은 출가자를 위한 출세간의 법이고, 윤회설은 재가 신자나 세속인을 위한 세간의 법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양립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으로 윤회설은 정법이 아니지만, 중생을 좋은 길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설은 두가지 교리가 가지는 모순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고, 두 교리간의 긴장이나 갈등은 여전히 남게 된다.
둘째로 윤회의 주체로서 실체적 영혼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법이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상극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은 없어지고 구성 요소로서의 오온은 상극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이원적으로 분리하여 영혼이라는 윤회의 주체는 진실한 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사론에서 말하는 중유(中有 : 中陰)나 유식의 법상(法相)에서와 같이 유위법(有爲法)으로서의 아뢰야식과 같은 것은 삼세를 통하여 윤회하는 주체이기는 하지만, 실체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Anna)의 존재에 대한 불타의 태도가 세계의 상주나 영혼의 존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 것이지 영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윤회 전생의 주체로서 물리적인 영혼의 실체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선악의 업을 젊어지고 윤회할 주체의 추구는 실재론적인 사고의 소산이다. 불교의 기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론적인 무아론과 정면 충돌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회의 주체로서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지만 업은 윤회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역시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회피에 불과한 것이다.
업을 짊어지고 업의 결과를 초래할 실체적인 주체가 없다면 윤회 전생하는 것이 아니라, 업이라는 인에 대한 과로서의 단순한 인과의 흐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