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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와 인간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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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현기 1984년 09월 31호
여름이 지나서야 산은 비로소 평화를 찾기 시작하였다.
여름내 지쳐있던 물소리도 이제는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귓가에 쌓이고 자작나무며 단풍나무들도 혈색을 되찾아 싱싱한 모습으로 일주문 밖에 서성인다.
산 뿐만이 아니다. 뒷방에 계신 노스님은 오랜만에 닫혀있던 문을 열고 환한 미소를 가을 하늘 깊숙이 흘러 보내고 어린 사미승의 해맑은 눈은 이제 가을 산의 푸른 고요를 담기 시작했다.
실로 山寺가 오랜만에 시끄러움을 벗어버린 해방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자연과 인간이 하나인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인간이 곧 하나의 자연이요, 자연이 인간과 합일된 구극의 정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8월의 산사는 얼마나 오욕의 파도로 넘실거렸던가.
술에 절은 말씀들이 길가에 뒹굴고 낯선 이국의 노래들과 육자배기 가락은 또 얼마나 계곡의 이곳 저곳에서 나무들의 귀를 어지럽혔던가.
이러한 행위 앞에서 종교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게도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과 죄스런 마음으로 우리는 8월을 보냈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드는 인간의 우월감이 얼마나 가소로운가를 새삼 절감하게 해 준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안쪽을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면 굳이 죄없는 백성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기에 오늘의 산사는 더욱 겸허해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가진 자들이야 카바레로 요청으로 다니면서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없는 자들이야 어디 저 野欲의 都市속에서 숨이나 한 번 크게 쉴 수 있겠는가.
가진 것 없기에 문화적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고 보면 하루쯤 인간잡사를 멀리 여인 산속에 들어와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으리라 생각하니 차라리 안스런 생각마저 들게 한다.
돌이켜보면 요즈음처럼 자연보호 및 행락질서에 대하여 떠드는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매스컴의 사회 계몽적 발언에 심히 불쾌한 생각이 먼저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이 그들의 형제인 인간의 권리를 빼앗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슨 자연보호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최소한의 언론의 양심마저도 잃어버린 자들이 어떻게 행락질서를 말하고 있는지.
우리가 진정으로 이 사회에서 이뤄야 할 것은 인간보호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보호를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사회가 인간과 인간이 서로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사회가 되었을 때 자연의 보호는 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면서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이웃의 인간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연을 보호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또 한가지 지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전국의 관광지화가 가져온 귀결이 오늘의 관광지 모습인 것이다.
옛 부터 정신문화의 산실이었던 寺院이 오늘날 정책적으로 관광지화 되었다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정신문화를 물질위주의 감각적 문화로 전락시켜 놓은 결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사회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있기에 무작정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탓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 즉 인간보호의 입장만이 자연을 보호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에 우리 불교인의 노력은 바로 이런 곳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80년대 접어들면서 정부의 관광화 정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족문화의 요체와 정신의 기둥인 사원은 이미 “관광사찰”이라 불려지면서 불교인의 생활공간을 앗아가 버렸다.
어느 관광학자의 말처럼 관광자원의 개발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지름길이요 민족 고유의 숨결을 구체적으로 충만 시키는 것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정부의 관광정책이 하루 빨리 제도를 수정하였으면 한다.
자연보호 관광자원 개발에 앞서 진정한 국민보호의 길을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언론이 인간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지배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균등한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참된 자연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10월이 되연 전국의 산사는 다시 소음으로 가득하게 되리라.
그러나 가난한 그들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애정 깊은 눈길로 바라볼 줄 아는 올바른 시각을 갖추었으면 한다.
山은 점점 가을로 깊어간다. 이 해의 가을은 가난한 자들의 조그만 기쁨마저도 앗아 버리는 매스컴의 행락질서 운운은 다시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