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佛國) 선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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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의 미소 - 월산
1984년 09월 31호
천년 고도(古都) 경주-우리 민족의 청서와 혼이 산재(散在)해 있는 도시. 그 옛날 원효대성 (元曉大聖)과 의상대덕 (義湘大德)이 거닐였던 길을 밟으며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을 따라 나그네가 되어 보라. 옛것들의 자취는 희미하고 바르크 담장에 쳐진 선명한 흰 선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때 신라의 영광이었던 서라벌, 이 땅이 곧 불국정토(佛國淨土)라 믿고 스스로 긍지를 가졌던 민족, 그 민족의 꽃이었던 불국사-시멘트로 된 광장 어디에선가 확성기로 들려 오는 안내 방송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무튼 불국사는 뭇 사람들의 누추한 발길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아직도 못다 이룬 천년의 꿈을 노래하고 있었다.
불국사라면 단순한 관광의 명소(名所)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불국사는 강원(講院)과 선원(禪院)을 갖춘 수도원이 있고 그 속에서 천년 천의 찬란한 불교 문화를 다시 일으킬 웅지에 불타는 수행승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러한 수도원이 있게 한 장본인은 한국 불교의 원로(元老) 월산(月山)큰스님!
그 분이 이 땅에 새로운 가람을 이루어 수행승을 불러모아 오로지 관광지 불국사에서 수행처 불국사가 되게하신 분이시다. 75년에 개원(開院)한 선원은 별천지(別天地), 명산(名山) 토함산 아래 포근한 알자리 제2의 불국사인 이곳이 시끄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Image)를 준다.
불국선원이라 쓴 대문에는 오도자(梧道者) 불입(不入)이라고 쓴 편액이 우선 눈에 뜨이고 「이문에 들려거든 분별망상을 버려라(入次門內 莫存知解)는 글이 보인다. 해제철이라 선실은 조용하다. 고졸(高卒)한 경봉스님의 주련이 붙은 채가 염화실(拈花室) 즉 조실스님이 거처 하시는 방이다. 시자(待者)도 없는 방엘 들어 삼배를 드리고 온 용건을 말씀 드렸더니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이시다. 방문객은 퍽 난처했지만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녹음기니 뭐니 다 치워 버리고 그냥 근황을 물었다.
「스님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는데 어떻게 여름을 보내셨습니까?
「그런대로 수좌들하고 잘 지냈어요 해인사 방장스님은 잘 계시는가?
그럴 때 같이 온 사진 기자가 스님 모습을 찍자 스님께서는 기자를 향해
「그래 내 마음 찍었냐?]
하고 묻자 당황한 기자가
「어떻게 마음을 찍습니까?」
「마음은 찍을 수 없는 겐가? 일체가 다 마음으로 생겨 난 것 일체가 유심조(唯心造)인데 왜 못 찍는가」
「아마 시원찮은 사진 기사인가 봅니다. 큰스님 마음도 못 찍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요즘 수좌들, 스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옛 스님께서 공부하시던 것과 비교해서 좀 말씀해 주십시요」
「내가 시원찮으니 우리 선원에는 공부 열심히 하는 수좌들은 안 오는 모양이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요즘 걸망메고 선방이라고 오는 것만 해도 여간 고맙지 않아요. 요즘 얼마나 세상에 팔리기 쉬워 명예와 쾌락과 돈…등 물질 문명이 극도에 달하여 자칫 노예가 되기 쉬운 말세에 걸망이라도 지고 다니는 것만 해도 대견스럽고 고맙지. 옛날에도 대근기(大根器)는 찾기 어려웠고 지금은 더욱 말할 것이 없지요.」
-스님께서는 어떻게 공부 하셨는지요?
「우리가 젊을 때에는 다들 화두를 들고 공부를 했지요. 지금과 마찬가지로…부산 선암사에서 오래 지냈지요. 육이오를 중심으로 해서…내원사에도 있었고.
-그 때는 아침저녁으로 선지식이나 조실 스님께서 계속 화두 점검을 하셨습니까?
「그래 요즘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수좌들도 게으르고 나도 마찬가지고…내 생각은 금강경 정도는 수좌들이 아침저녁으로 송경했으면 좋겠어 신심(信心)도 나고, 그러나 통 할려고 해야지」
-언제부터 우리나라 선원에서 불입문자(不立文字) 하는 풍조가 있었는가요?
「진정한 수행승은 일체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지, 득력(傷力) 할려면 화두 타파하는 것만 그 전부여야해 물론 어록이나 부처님 말씀은 필요하지만 선원에서는 화두 타파하는 것에 전심전력을 투구해야 해요. 그밖에 일체 것은 다 없애고…선원에서는 오직 일념으로 화두 타파를 해야 합니다. 애써서 화두타파 할려고 해도 잘 안 되니까 부처님 말씀도 참고로 하고 조사어록도 좀 보고 깨달음과 연관없는 것은 다 없애고 오직 화두 일념으로 가야 한다고 보지요」
-그러면 포교 문제나 교학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와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견성을 중심으로 하는 수좌들과 교학(敎學) 과 포교하는 학자나 포교사는 그 방법이나 소질을 개발하고 또 종단적인 지원도 있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한국 불교는 선종이 대표적인 것이긴 해도 선종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니까 염불종이나 그 밖의 의식의 문제도 더욱 찬란하게 하고 포교에도 더욱 힘써야 되리라고 봅니다.」
-견성과 포교문제 양분(兩分)적인 것에서 퍽 젊은 수행자들이 고민하고 갈등을 가지는데 스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내가 볼 때에는 견성이 급하고 중요하다고 봐요. 그것은 곧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 남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같지요 내 발등의 불을 끈 연후에 남의 발등에 불이 보이는 것과 같이 내가 견성하고난 연후에 포교도 있다고 보지요」
-한국 불교에 기복적인 성격이 강한데 그 면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복(祈福)이란 말은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라고 봅니다. 누구든지 복받고 건강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중생들은 모두 노득심이 있지요. 그것을 어떻게 승화하느냐가 문제가 되지요. 개인의 행복과 영달에서 사회전체의 행복과 영달을 추구하게 하는 보살 사상도 역시 차원 높은 기복이지요. 흔히 기복 불교를 욕하는데 진정한 기복의 의미를 아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부처님도 중생의 의원이 되고 빛이 되고 식량이 되고 그렇게 되라고 했거든··
그런 의미에서 불교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도 하고 병원도 만들고 무당불교든 무엇이든지 부처님의 명호아래 모여서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해야 되리라고 봅니다. 참선하는 이는 참선 잘하고 사판(事判)하는 이들은 일 잘하고 그게 다 불교 발전이라면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야지요」
-생활불교라는 말이 있는데 진정한 생활불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활불교라는 말에 우선 생각나는 것은 원효스님이 신라 땅을 다니면서 바가지를 두드리며 노래도 하고 교화도 했는데 우선 불교가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매스컴을 통해서 미술이나 공예…그밖에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염불을 하더라도 옛날과 같이 북과 징을 치면서 더욱 신명이 나고 찬란하게 해서 그들과 우선 가까워져야 된다고 보지요. 그리고 동사섭(同事攝) 즉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럴려면 그들의 기쁨과 아픔의 현장에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을 해서 그것에 따라 교화해야 되겠어요. 우리의 조상들은 산 이름을 전부 불교경전에 의하여 붙인 것을 보면 퍽 현명한 생활불교 실천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으로는 화두 하는 것을 주장하지만 불교 전체를 봐서는 여러가지 모든 종파가 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은 불교 전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의견이 전체 불교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장은 수도장답게 포교당은 포교당답게 각기 특징을 가지면서도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만 진정한 불교의 발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여러 말씀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십시요.
「화두하는 수좌들은 모든 것을 일단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생을 교화하는 큰길로 나아가는 길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
염화실 밖은 초가을의 햇빛이 찬란했다. 빛살 속으로 날아다니는 오후 잠자리가 맴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