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 영원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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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법연
1984년 07월 29호
오늘도 나는 고속터미널과 서울역 대합실을 번갈아가며 기웃거려 본다. 그 무슨 예정된 여행이 있어 차편을 알아 볼려는 용무에서도, 연세많은 산중 노스님을 마중나간 것도 아닌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차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빠른 걸음새로 매표구앞까지 곧장가서 사람들 끝에 우둑히 서있다 줄이 다하면 다시 다른 줄끝에 서보기도 하고 행선지가 다른 줄 중간 어중간한 위치에 비껴서서 표를 팔고있는 차편의 시각을 알리는 파란 전자판 시계침을 우연히 치어다 보다가 내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홀연히 발길을 돌려 커다란 벽면에 각 지방의 지명과 시각표, 그 옆칸의 차비의 숫자를 낱낱이 훑어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속셈을 해본다. 차표를 사서 기다리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 틈의 빈 의자를 골라앉아 텔레비죤 수상기에 요란스런 소리와 색깔로 화면이 무쌍으로 바뀌는 쇼를 보며 밍기적 거린다.
어떤 연유에선지 모르게 첨 터미널을 들어올 때와 똑같은 행동을 나는 몇번인가 반복하곤 한다. 나의 그 되풀이되는 행동거지가 몇사람에 의해(그 터미널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들킬 때 쯤해서 사람들은 분주하게 지정된 좌석에 제각끔 찾아 앉는다. 시간이 다된 차들의 문이 자동용 핸들에 의해 사정없이 닫기고, 나는 터미널을 서서히 빠져나가는 차 뒷모습을 몇 차례나 훔쳐 보면서 터덜터덜 나도 터미널을 빠져나온다.
나의 이 맹랑한 버릇이 언제부터 습벽의 하나로 자리했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서울이라는 지역적 조건이 터미널과 역이라는 공간으로 지정된 사실외엔, 차라리 그곳들은 떠남의 광장이며 그 어느 낯선 곳에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의미에서 꿈과 동경의 표정으로 지칭된 곳이라 함이 옳을는지. 그러나 그것도 나의 버릇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되지 않는다.
나는 서울에 온지 3년이 되어가고 그 3년동안 세번의 봄과 겨울 그리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숱하게 그곳들을 어슬렁거렸지만, 나의 여행은 두 세번이 고작이었지 싶다. 그 두 세번도 내가 여행이라는 낱말에 부여하는 의미의 여행은 한번도 되지 못했던 걸로 기억된다.
어쩌면 그 숱한 떠남에 대한 유혹을 실행으로 옮겨 보겠다는 의지에 앞서 그 떠남에 따르는 회의와 실망을 두려워 했는지도 모른다. 그 떠남의 일회적인 행동에 나 자신 너무 완결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늘 유예되어 더욱 짙은 향수의 빛깔을 띠어가고 있는 떠남에 대한 또 다른 애착심에서 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떠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든 그 어떤 식의 떠남이든 운명과 같은 서글픔과 비애의 일이다. 운명은 변혁 되어져야 미완의 개체며 절망의 질곡이다. 우리의 떠남은 그러한 의식의 눈뜸이며 미지의 세계에로 나아가기 위한 철저한 자기 변신이 요구되는 일일진데 어찌 소홀히 떠남을 생각할 수 있을런지.
엄격한 겨울 동해바다와 가을의 그 황금색 시골 들길사이 모든 길들이 깨어나 내 가슴에 구비치며 떠남의 전리품으로 손짓하고 있지만 그러한 풍랑과 청취는 한낱 허식일 뿐, 떠남에 근본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리라는 기우에서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의가 없는 것이기에….
결국 나는 구실과 동기의 시기를 기다리며 빙빙 그 주위에서 발지럽게 맴도는 소아인 셈이지 싶다.
아, 하늘에 가득히 떠도는 동경의 여린 넋들이여, 언제나 우리들에게도 떠남의 여장을 챙겨, 닻을 올릴 황홀한 기쁨의 날이 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