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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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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4년 07월 29호
자비는 부처의 어머니요 보살의 고향이며 중생의 안주처이다. (智度論)
또한 자비는 모든 존재들의 생명의 젖줄이기에 불의와 폭력을 용서하지 않으며 복종과 타협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자비는 불의 앞에서 시퍼런 정의의 칼이 되어야 하며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용맹스런 사자의 표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이러한 자비정신이 종종 비굴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지난 6월 11일 조계사에서 영화「비구니」의 제작중지를 요구하며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비구니 스님들이 순식간에 온몸과 머리를 곤봉으로 난타당하고 얼굴이 짓밟히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졌다. 이 상황에서 2명의 비구니 스님이 혼수상태로 3~4일만에야 고비를 넘겼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비구니 스님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불교도에 대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불의도 용서(?)하고
폭력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자비일까.
불교에 폭력이 가해진 것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80. l0. 27 법난이후 끊임없는 문화적 폭력이 알게 모르게 자행되어졌으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땅의 불교도는 자비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비굴한 모습으로 좌시만하고 있었던가.
외부적 폭력은 힘이 약한 집안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교단 내에 발생하는 폭력이나 법정투쟁은 무슨 까닭이며, 싸움으로 비화되는 파벌투쟁은 어인 일일까.
결국 올바른 자비의 실천이 없었기에 오늘날의 한국불교가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굴욕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이런 상황을 묵인하면서 누가 감히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세치 혓바닥을 놀려대며 납자(納子)라고, 불교인이라고 중얼거릴 수 있을까.
불교는 진정 자비 문중이기에 모든 것을 묵인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만을 자신의 안전만을 구하는 오합지졸의 집단인가,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여기에는 서글픔만이 가득 고여있다.
이제 우리는 천길 벼랑위에 서 있는 상황이다. 불교의 사활이 순간에 좌우될 기로에서 있는 것이다.
자!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원은 고난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 순교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안식처. 부정한 우리 같은 것들의 삶의 영위처는 아닐진대 오늘 저자의 거리로 돌아가 세끼 밥이나 벌어먹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