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큰스님께서는 출가하실 당시만 하더라도 이조시대 불교의 잔재인 스님들을 업신여기는 풍조와 또 거기에다 대처승 문제 등,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셨는데 그 당시의 율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그 당시는 금방의 말대로 어려웠어요. 아무런 제도적인 장치가 없었지요. 거기에 대처승 문제도 심각했구요. 내가 범어사에서 보살계를 받는데 그냥 일반 여자신도들 속에 섞여 그렇게 보살계를 받았지요. 그러니 뭐 질서가 있었겠어요? 그저 1시간쯤 졸다 보니까 보살계를 받게 됐어요. 참 한심했지요?\"
문 : 그럼 그때 율사스님네로는 어떤 분이 계셨는지요?
\"뭐 특별이 율사라고 지청할 만한 이로 내 기억 속에 있는 분으로는 용성스님, 동산스님 그리고 별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봉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지요. 일봉이라고 한일(一)자 새봉(鳳)자를 쓰신 분인데 그 인품과 덕망이 가히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었지요. 저도 퍽 존경해서 결국 내가 율을 연구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지요.
그때는 지금 쓰는 것과 같은 계율이 없어서 그리고 잘 몰라 기도를 하고 여러 책을 찾고 그리고 책을 만들고 율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지요. 물론 오늘날 지관스님이나 일타스님같은 이들이 다시 율을 많이 연구하고 그 계율을 만들고 했지만 그 방향 같은 것은 나의 영향이 조금 있다고 보아요.
요즘은 참 많이 계상(被相)은 연구되고 여러 책도 있어 어지간히 계에 대한 것도 밝혀지긴 했지만 이론적으로만 이해는 많이 하고 있을 뿐, 머리로만 알고 있지 실행이 없어요. 그러니 계율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행인데 이해한다고 될 성질이 아니지요. 그 행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해야겠어요.\"
문 : 그럼 그때에도 오늘날과 같은 단일계단이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다만 여러 곳에서 설했어요. 요즘 단일계단을 설하면서 느끼는 것은 너무 문중 중심이 되어서 서로 전계사나 교수스님이나 갈마스님등 갈라 먹기식이니 질서가 없어 큰 문제인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 할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근본 단일계단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이로군요.\"
문 : 신도들을 위하여 요즘 어느 절에서나 보살계를 많이 설하는데 스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보살계는 실제로 중국에서 생겼지 남방불교에는 없어요. 다만 그 계품이나 계상은 훌륭하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범망경이 한국 불교에 더 나쁜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요. 설(說)하는 사람은 많고 실제로 지키는 사람은 적으니까 형식적인 연례 행사에 불과하지요.
오히려 남방불교같이 팔관제를 신도들에게 지키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실행 가능한 것부터 해야겠지요. 처음 불교가 들어 온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팔관계를 많이 지키고 설했지요.
근본 오계라도 착실히 잘 지키면 돼요. 부처님 당시에도 실천 가능한 것만 받게하고 철저히 지키라고 했는데 요즘은 너무 문란하고 안 지키고 형식적으로 계를 받는 것만 위주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계에 대한 권위도 없고 번거렵기만 하지요. 오히려 신도들은 삼귀의의 정신과 팔관계와 5계를 받아 여법(如法)히 지키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문 : 스님이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활해야 겠습니까?
\"계를 스승으로 삼아야겠지요. 버어마 스님들은 참 계를 엄격히 지켜서인지 고승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오후불식 (午後不食)같은 어려운 계도 잘 지키고 생활이 퍽 고상하고 정돈되어 있지요. 해외를 다녀 보니까 한국 스님들은 그래도 풍족하게 산다고 보지요 스리랑카나 티뱃 스님들의 생활은 비참할 정도지요. 저녁을 먹고 싶어도 식량이 없어 뭘 먹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 스님들은 요즘 와서 오히려 너무 물질이 풍족하기 때문에 승려 생활의 기본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지요. 그래서 남방불교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방불교 스님들을 별로 존경하지 않아요. 요즘 법사들처럼 말만 번드러하게 하면 뭘하나요. 더 중요한 것은 행원이지요. 오히려 말보다는 행동으로 훌륭하게 하는 것이 더욱 큰 법문을 하는 스님이라고 보지요. 그리고 작은 것에도 규범이 서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왜 많지 않아요. 시간관념, 약속 이행등 그런 것이 희박하거든요. 그리고 옛날에는 강당에서나 선원에서 경책을 많이 했지요. 그러면 모두 스님네가 순직해서 잘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너무 자기 주장이나 자기 변명이 많고 그리고 경책을 잘 안 받아들이지요. 승려 생활은 겸손하고 청빈한 것을 생명으로 알아야지요. 그리고 경책해 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그것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리라고 생각 합니다.\"
문 : 요즘은 스님네가 대중처소 보다는 작은 암자의 주지나 그런 소임을 많이 찾고 또 지역 포교를 위해서는 필요로 한 것으로 보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네는 가능한한 대중에 살아야해요. 대중스님네들이 알게 모르게 스승이 되니까요. 그리고 경책도 해 주고 그리고 승가의 일원(一員)원라는 의식도 있고 거기서 자기 생활의 신조도 나온다고 봐져요. 공동생활의 의미는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므로써 서로 서로가 원만한 인격을 갖춘다고 보지요.
그러니 대중에서 젊을 때에는 익히고 배우고 한 연후에 개인이 있을만한 작은 절에 가야지요. 포교도 좋지만 자신의 인격이 잘 다듬어진 후에야 포교가 되지 그런 기분이 없으면 나태해지고 신심도 적어서 수도 생활이나 승려 생활에 별 이득이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부처님 제자들이니까 너무 본사 그리고 문중만 따지는 풍조는 극복되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애사심(愛寺心)올 버리라는 말은 아니지만 전체 종도(宗徒)의 의견을 수렴해서 소아적인 자기 문중이나 본사라야만 된다는 의식은 이제 전체 불교를 위해서 지양되어야 할때라고 봅니다. 다소 개인이나 단체는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를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도 살고 종단도 사는 길이니까요.\"
그동안 장시간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 받들어 열심히 수행 하겠습니다. 자주 오셔서 경책해 주십시요. 그럼 오래 이 산중에서 쉬었다 가시기 바라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마음 한 가운데 기쁨을 느끼며 해인사로 돌아왔다.
(대담:향적, 편집: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