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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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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강래철 1990년 08월 102호
대체로 사람들은 최초로 종교를 선택할 때 부모의 영향 아래서 자신도 모르게 선택되어 버리듯이 나 또한 부모님의 종교였던 불교신자였다. 약간 엉터리이긴 했지만.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이렇다 할 불교적 신념이나 교리적인 지식 또한 가지고 있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조사하는 생활통지표의 신앙란에는 언제나 ‘불교’ 이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써 넣었다.
그러다가 지난 86년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가 다가왔다.
나의 근무지가 남국의 섬, 재주도로 결정이 난 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으로 부처님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항을 떠나 섬생활은 바다 건너 외딴 섬으로 귀양왔다는 생각만으로도 외로웠고, 그러다가 보니 고향사람 고향근처의 냄새만 맡아고 깜빡할 때였다.
그런데 우연히 귀양지 제주에서 고향선배를 만났고, 그 선배를 따라 절에 나가 불교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웅크리고 어떻게 하면 이 섬을 탈출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나에게 그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태해져 가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半), 외로움 잊기 반, 시간 메꾸기 반으로 출발하였지만 차츰 그것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법회인원도 얼마되지 않았고, 또한 초창기라 모든 것이 엉성하고 서툴기만 하였지만, 대체로 초발심들이라 모두 열심이었고 불심으로 맺은 불자들이었기에 여러 나쁜 조건에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였다. 비록 나는 법회의 뒷바라지를 담당하는 말단 조연이었지만 그 법회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모임이 제주 불교신행단체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신행이 활발한 단체가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흐뭇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느낀 것은 어떤 일이든지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다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결국은 좋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열심히 기도하라고 전한다. 종교적 특성은 그 실천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교리해석이나 법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실천수행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행의 방법은 여러 가지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느낀 생각이지만 우리는 자신이 불자라는 것을 자랑으로 느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게 불교인임을 밝히고 또 불자답게 행동해야겠다. 기독교인들은 어디에서나 마치 위세라도 부리듯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자랑하는데 불자들은 너무나 소극적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수영선수 최윤희씨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먼저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을 때, 정말 같은 불자로서 고마움을 느꼈었다. 별것 아니지만 스스럼없이 불자임을 나타내 보일 때 정말 대견스러웠다.
지난 87년 경제기획원의 통계에 의하면 총인구 4,476만명 가운데 58%인 2,600만명이 무종교인이란 통계가 나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가운데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많은 무종교인들을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한가지 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대체로 요즘 일부 젊은이들의 생각으로, 기복신앙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기복신앙은 모든 신앙형태의 가장 기본형태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 내 집안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염원이므로 한낱 지식이나 어설픈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이제까지의 기복신앙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 어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가지고 있던 소박한 신앙심을 오늘날 우리 젊은 사람들이 그 흉내라도 낼 수 있는가? 과학적인 사고를 한답시고, 논리적인 해답을 얻는답시고 하지만, 종교는 과학적인 근거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성(理性) 그 무엇이 그 속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기복신앙의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이기적인, 극히 자신만을 위하는 작고 소극적인 염원을 보다 큰 발원을 할 수 있도록 대승불교의 보살적 사고를 가르치고 전환하도록 하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 사회는 물질문명이 지나치게 팽배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쉬운 세상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수행하고 정신우위의 삶을 삶으로써 부처님의 정법을 몸소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 바른 삶이야말로 진정한 불국토를 이루어가는 대도(大道)임을 인식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면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