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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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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4년 06월 28호
동 트오는 여명(黎明) 앞에 서 보라! 장엄한 서곡(序曲) 처럼 퍼져나가는 빛살 속에 서보라! 찬란한 아침 햇살과 함께, 어둠을 물리치는 고통과 함께 새벽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묵은 어둠을 버리고, 새로운 빛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 것이 자연의 이법 (理法)이다.
새가 태어날 때 알을 깨는 고통이 없이는 태어나는 영광을 입을 수 없다고 헬만 헷세는 데미안에서 말했으며,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고 영원한 청년 만해는 말했던가. 잉태의 고통은 창조의 기쁨을 위한 전주곡(前奏曲)에 불 과한 것. 역사는 늘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자들을 기다린다.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고 용감하게 빛을 열려는 자들에게 역사의 지평은 열릴 땅을 예비(豫備)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도 세상의 모든 부귀와 욕락을 버리고 스스로 6년간 고행의 멍에를 짊어져서, 용감하게 삼독과 무명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마침내 첫 새벽의 문을 열었던 분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분이 열어놓은 빛을 향하는 자들, 그분을 따르려는 자는 먼저 탐, 진, 치 삼독의 어둠을 여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희망과 기대와 염원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의 문 앞에 서 있다. 묵었던 전근대적인 것에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문을 열려하고 있다.
더러 새벽을 준비하기 위해 서로 오해와 반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목과 오해도 새벽을 열려는 준비 작업에서, 창조를 향한 진통으로써 있을 때에만 의미 있는 반목과 오해가 될 뿐, 반목을 위한 반목이거나 시비(是非)를 위한 오해일 때 새벽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리라.
이번 제도 개혁이란 말이 역사 앞에 새로운 새벽을 가져오는 작업이기를 기대한다.
6월은 맥하(麥夏)의 계절.
들녁에는 훈풍에 보리 익는 냄새가 구수하고 뜨락에는 장미의 개화(開花). 그리고 각 수도원에서는 죽비 소리에 칠통을 타파하고 새로운 우주를 잠 깨우는 소리, 소리들-, 그 소리 속에서 참된 새벽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