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용이된 운문의 주장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선의 어록 - 편집실 1984년 06월 28호
원오(圓橋)가 수시(수示)하기를, 제불과 중생은 본래 다르지 않고 산하와 나 사이에 어찌 차이가 있겠는가 ! 그런데 어째서 서로 다른 두 가지로 대립하게 되는가? 만약 이 문제를 밝힐 수 있다면 궁극의 도를 이루게 되지만, 터럭 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안된다. 만약 어긋남이 없다면 이 산하와 대지 따위는 단숨에 짓이겨 버릴 수 있게 된다. 자,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밝힐 수가 있겠는가?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본칙 (本則)
여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운문 화상이 화하(座下)의 운수들에게 주장자를 불쑥 내밀며, 「이 주장자가 변해서 용이 되어 우주를 삼켜 버렸다. 자, 산하와 대지가 어디 있느냐 ? 」하고 말했다.
송 (頌)
지팡이가 우주를 삼켜 버렸다.
아예 꽃물결 따라가 용될 생각 말아라.
꼬리를 태운다고 〔꼭 용이 되어〕 구름, 안개, 휘감는 것 아니라네.
못 오른 자여, 마음 아플 것 하나 없노라. 〔지팡이로 우주를 삼키지 않았는가!〕
이제 내 이야긴 끝났네. 알았느냐, 모르느냐?
티없이 맑은 마음되어, 번거로움 잊으라.
그렇지 못하면 칠십 이방은 외려 약괄세. 백오십 대를 못 면하리.
설두(雪竇)가 이 때 벌떡 단상에서 일어나 주장자를 움켜잡고 곧장 내려오네.
아, 무서워라. 중들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벽암록 60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