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의식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시론 - 현기
1984년 06월 28호
불교의 정신은 깨달음을 근본으로 하여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화해를 목표로 하는 자비(慧悲)의 실천에 있다. 따라서 불타(佛院)의 가르침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불교교단은 세계의 갈등과 이 민족이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무명에서 해방시켜 본래 부처인 인간의 참모습에 이르게 하려는 불교의 가르침은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며, 나가가서는 전민족 전 인류의 해방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불살생(不殺生)의 적극적 표현인 방생(放生)의 의미가 바로 핍박으로부터 해방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말하는 것일진대, 오늘날의 우리는 참다운 인간해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인간을 속박시키고 억압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며, 그 곳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전환의 길을 민중들에게 제시하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의 불교는 화석화된 교리의 해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여전히 관념적이고 고식적이며 반역사적 반민중적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승(僧)과 속(俗)이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둘이 아니라는 경계의 타파는 추상적 관념에서만 희유(戱遊)되어지고 절대성을 부정하는 불타의 가르침은 오히려 승려 개인의 고정화된 관념적 현실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승, 속에 완고한 경계가 형성되고 승단은 권력의 저편에서 정치의 충실한 시녀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한국불교가 중흥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한 역사와의 만남이 있어야 하겠고, 정치권력의 구조적 논리와 모순을 파악하여, 그것이 어떻게 불교교단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에 철저한 대안을 세워야 한다.
불교의 역사의식이란 곧 세계나 민족 혹은 승단을 개체의 독립된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緣起)에 의해서 관계되어진 현상이기에 그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분석하여 조화를 이루게하는 정신이다. 저 화엄(華廣)의 법계연기(法界緣起)중 육상원융(六相圓融 :일체 제법의 연기적인 관계를 총상 별상 동상 이상성상 괴상의 여섯으로 분류한 것) 의 정신이 바로, 불교의 역사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을 하나의 총상(總相)으로 바라본다면 승단이나 승려 개개인은 총상을 이루는 별상(別相)이다. 따라서 민족과 승단과 개인은 서로서로 연기적인 관계 속에서 민족 전체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가 각기 독립적인 절대의 개념으로만 파악되어진다면 조화는 깨트려지고 부분의 존속을 위한 대립이 파생되는 것이다. 한 민족에게 있어서 정치는 정치로서 종교는 종교로서 그 개별의 독립성과 특성은 인정하나, 그것이 서로 자기 집단을 위한 대상으로 삼고자 했을 때 바로 민족 분열의 화를 초래케 된다.
불교가 역사와의 만남은 바로 세계의 화해를 뜻하며 불교교단의 무명(악순환)에서 해방되는 인류 전체의 동시적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 살고있는 불교인의 자세는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첫째는 우선 조선민족임을 자각해야 한다. 조선민족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 여건속에서 태어났기에 숙명적으로 한국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내재하고 있는 모든 고(苦)의 문제에 책임을 짊어지는 사람임을 말한다. 이를테면 분단의 문제, 농민과 노동자의 문제, 청소년 문제, 서구문화 범람에 따른 전통문화 단절의 문제 등 이런 제반 문제에 책임을 느꼈을 때 비로소 불타와 민족을 진정으로 만날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인이라는 사명의식(使命意識)이다. 불교인이란 정법을 구현하고 승단을 호지 할 책임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승단은 얼마나 싸움의 소음으로 가득 찬 곳이었던가. 재가불자들은 현세적 충족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종교의 권능한 힘을 빌리려 했던가. 이러면서도 우리가 불자(佛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승려의 한 사람으로 할 말은 없지만 승단이 외부 집단의 압력을 받고 있을 때, 모두들 스님들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승단을 지켜야 할 불자들이 삼보(三寶)를 목청높이 비땅하면서, 물고기 관광이나 하러 돌아다니지 않았으며, 현세적 이익을 위하여 점이나 보러 다니지 아니했던가.
관광 불교하는 사람들, 학문 불교하는 사람들, 여가 선용으로 불교 믿는 사람들, 무당 불교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불교인이 아니다. 우리가 불교인이라 말할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치로 믿고 저 진리의 세계에 목숨을 바쳐 귀의하여 참된 정의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하여 민족의 모든 마라 (mara :악마)를 물리치는 불자가 되어야 한다.
위의 2가지를 갖추었을 때 우리는 부처님께서 49년간 인간 해방을 위해 고뇌하신 그 깊은 뜻을 계승할 수 있으며 역사의 깨달음, 연기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불자(佛子)들의 사명(使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