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의 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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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 취영
1984년 06월 28호
최초로 불상(佛像)이 조성되었을 즈음 불상의 조성에 따른 여러 전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설화는 부처님께서 생모 마야부인을 위하여 천상세계로 설법하러 가셨을 때 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존경했던 가우삼비의 우다야나왕은 부처님을 너무나 뵙고 싶어서 백단향 나무에 부처님의 모습과 꼭 닮은 상(像)을 조성했는데, 부처님께서 천상에서 돌아오시자 그 백단향에 새겨진 불상이 일어나 부처님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 불상에게 앞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포교할 임무를 주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은 어디까지나 설화에 불과한 듯하고 오늘날 불교미술사(佛敎美術史)에서는 무불상(無佛像)시대에서 불상(佛像)시대로 옮겨가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즉,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이정표가 되는 역사적 과제로써, 그것은 흔히 근본불교이며 승원 중심의 불교이던 소승불교사상이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대승불교 사상으로 전환될 때 일어난 변화이다.
이때까지 스투파(Stupa :橫)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많은 비하라(Vihara: 승원)는 차즘 새로운 불교 세력인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보다 더 실제적이고 대중적인 신앙의 동기를 유발(有發)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부처님의 상(像)을 만들어 그 위대성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써 더욱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출가자 중심의 원시불교가 부처님의 법에 대한 깨달음으로 치달을 것을 표방했던 것이, 이제 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인격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을 낳게 했다.
최초로 불상이 나타난 지역은 어디든지 교통이 발달한 상업도시였으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마투라(Mathura)와 간다라(Ganhara) 지방이다.
갠지즈강 상류의 중북부 인도에 위치한 마투라는 전통적이며 인도 양식의 불상을 만들었고 서북 인도인 프가니스탄 쪽에 위치한 간다라는 외래적인 양식의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그 시기는 대체로 A.D 1세기경이었다. 이 시기의 인도는 마우리아 왕조가 붕괴된 후 마가다 그리고 서북제왕국, 데칸, 카링카등 4왕국으로 분할되었다가 기원전 130년 경에는 일시 샤카조(朝)가 흥기했고, 기원을 전후하여 중국의 변방족이며 유목민이었던 쿠산조(月民족)가 인도 중북부 전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특히 카니시카왕(120~141경)은 대제국을 건설하였는데 캐시밀, 야르칸트, 호탄, 카시카르 같은 서역 지방까지 지배하였고 동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일생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불교를 신봉하여 불교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는데, 당시의 대승불교의 사상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주된 신앙의 대상이 되어오던 탑에서 자연히 그 신앙의 대상이 불상 쪽으로 바뀌었으며 불상은 이제 불교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으로써 그 영향력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불상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정확히 표현하느냐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어떻게하면 종교적인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인간인 부처님을 어떻게하면 신앙의 대상으로써 위대함과 자비함을, 그리고 초월자로서의 품격을 표현해 내느냐하는 예술적 신앙적 고뇌가 엿보이는데, 마투라 불상은 전체에서 풍기는 인상이 온후하고 여성적이며 옷의 주름도 극히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의혹과 앙상과 유혹을 뛰어넘어 영원을 지향하는 당당한 모습의 입상(立像)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이미 야차(夜又)와 같은 신상(神像)을 만들었던 경험이 그 바탕이 된듯하며, 간다라의 불상은 헬레니즘의 신상처럼 선이 굵고 사실적이며 아폴로신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상을 조성할 때 가장 중요한 기본은 역시 32상(相)과 80종호(種好)에 의지해야 하는데 32상과 80종호는 다같이 인도 사회가 상정 (想定)한 이상적인 성인(聖人)이나 전륜성왕의 상으로써 그 이후의 불상 조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주) : 간다라는 인도의 서북부 폐르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옛이름으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이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A.D 1~2세기에 융성한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