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에 대한 일고(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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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소허
1984년 06월 28호
세상이 무상(無常)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이를테면 「존재(存在)」의 속성을 들어내는 말인 우리는 흔히 무상하다는 말을 허무하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적(同意語的)인 의미 (意味)로 쓰고 있다. 무상(無常)이 곧 허무(虛無)와 직결되는양. 그러나 다행히도 인생이 무상하기 때문에 허무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만약 무상하지 않다면 우리의 삶, 그것은 화석화(化石化)되어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의 삶은 살아 있는 것이며 생명 그것이고,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는 있는 것이다.
사실 말, 개념(槪念), 그 자체야 뭐 어쩌고 저쩌고 할 게 있올까마는, 죽이고 살리고야 내 할 탓이 아니겠는가. 살아 있는 말과 죽어 있는 말의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 그래서 어느 말, 어느 개념 (槪念)이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여기선 무상(無常) 이란 말을 들어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말은 생각을 유도하고 생각은 삶의 방향을 이끈다. 그러므로 어느 개념이 어떤 고식화된 생각을 유도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개념을 주축으로 하는 삶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무상이란 말만 하더라도 이 말이 갖일 수 있는 보다 살아 있는 의미(意味)보다도 이미 고식화 되어 만연된 그것의 분위기가 있으니, 일반적으로 덧없다, 허무하다, 실답지 않다, 동의 뭔가 쓸쓸하고 공허한 기분의 말처럼 쓰여져 왔다. 그래서 더러는 인생이 무상해서, 삶이 공허해서, 허무해서, 하는 둥의 말과 더불어, 때마침 어떤 좌절된 체험을 동반한다면, 이러한 것이 서로 상부상조하여 그리고 생각의 유도에 따라 감상적인, 때로는 절망적인 생(生)의 분위기에 젖어 비통해 하기도 하며, 마치 그러한 것이 실제적으로 생(生)의 한가운데, 아니면 그 바닥에라.도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몸부림치거나, 그런 분위기에 함몰되어 그 어줍잖은 생(生)의 끝장을 보고마는 일들이 있어지지 않는가.
무상(無常), 문자적인 자구(字句)의 풀이를 보더라도 그것은, 늘 그렇지 않다, 늘 있던 것처럼 있지 않다, 항상하지 않다 등의 어떤 존재의 양태가 굳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의 연속상에서 파악되는 이를테면 「존재(存在)」의 속성을 들어내는 말인 듯 싶다. 그러므로 무상(無常)이라는 말은 생(生)의 흐름을 그 본연성(本然性)을 들어내는 소위 「존재론적(存在論的)」인 개념이지 그 무슨 항간의 분위기처럼 감상적이어서 극복되어져야 할 기분의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거기엔 그 무슨 절망이니 불 안이니 하는 것 따위는 없다. 뭐 꼭 그렇게 본다면 안될 것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고식화된 사유(思惟)개념으로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때 왕왕 우리의 삶이 앞서 간 자들의 이미 있어져왔던 삶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복사판처럼 쓸쓸한 것은 다시 없다고 본다. 똑같은 말을 사용할지라도 그 신선도를 더하고 덜하는 것은 각자의 나름이며 우리의 맘이다. 어떻게 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나게 할 것인가. 보다 더 풋풋한 감성(感性)의 어장(魚場, 語場)에서 노닐어 볼 것인가. 말하자면 언어의 마술사(魔術師)이어야만 말의 안팎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 것이어서 말의 한정성(限定性)과 그 옭가미에 걸려들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말(言語)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생이다. 말(言語, 椰念)을 타고 달리는 생(生)의 들판, 그 노을, 생각해 보면(그렇게 보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보다 더 진한 무엇이 아니어서 그런가. 그것은 말로서는 다 들어낼 수 없는, 해갈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서인가. 말은, 개념은 사유의 그물을 엮고, 그 그물은 우리의 팔팔 뛰는 생(生)의 비린내를 건져올려 저 뭍 밖으로 내팽겨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항시 해갈되지 않는 갈증으로 향수를 달래며 저 고향을 그리는 눈망울로 애타해하는지도 모른다. 수원(水源)을 떠난 갈증으로 목말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생(生)의 강(江)가에 선 어부이자 그물이자 그 싱싱한 비린내이기도 하지 않을까.
강(江), 강물이 흐른다. 말의 강물이 흐른다. 말의 안팎, 그 강언덕에서 생각해 본다. 말의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