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군에 있는 영축산 통도사로 가기 위해 대구에서 일반 고숙뻐스를 타고 1시간30분만에 통도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5월의 영축산은 마치 푸른 제복을 입은 장군처럼 헌출했다.
영축산은 본디 부처님 당시의 마가다국의 기사굴산의 한 이름. 부처님께서는 7년을 영축산에 머무시면서 묘법연화경(妙法運花經)을 설하시었고, 대중에게 한송이 꽃을 들어 보였던, 불교의 성지(聖地), 그 거룩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기사굴산 영축산!
통도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영축산문을 들어서면 열병(閱兵)하듯 늘어서 있는 소나무 숲길, 로마의 작곡가 레스피기(Respighi, 1879~1936)가 우리나라에 와 이곳 영축산을 보았더라면 틀림없이 「영축으로 가는 소나무」라는 이름의 작품을 작곡하였으리라. 노송(老松)의 운치!
5월의 나무 숲에 들면 누구든지 한 그루의 나무처럼 싱그러워진다. 경이로울 만큼 푸른 소나무 숲을 걸어 가노라면 여기가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그래서 불보(佛寶)사찰이구나 하는 순연한 마음이 생긴다.
천삼백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새겨진 역사 속에서 숱한 영욕(榮辱)을 감내(權耐)하면서 서 있는 나무들과 풀과 흙 한줌은 그냥 나무, 돌, 흙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가람을 수호해 온 많은 선사(先師)들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 그 속에 있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왕 15년(서기646년) 이곳에 자리를 잡고 불교의 새벽을 열었던 자장율사에 의해 최초의 계단(械壇)을 열고 엄숙한 청규를 세웠던 나라의 큰절이다.
「계율을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티끌 속에 백년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吾寧一日持械而死, 不願百年破械而生)던 자장율사의 개산(開山) 정신이 응결된 곳, 한국불교 정신의 고향.
시냇물은 휜 바위 위로 흘러내리고 개울 위에 놓인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가 저 만큼 보이는 앞에 대원군이 현판을 썼다는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 통도사는 올 갑자년에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고 자장스님의 개산정신을 계승하여 영축총림을 개설하였고 총림의 어른으로는 산중 조실이었던 월하 큰스님을 추대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보궁(寶官)에 참배하고는 곧장 월하큰스님이 주석하시는 보광선원으로 향했다. 입선중인지라 물 나간 바다처럼 선실은 조용했다.
스님께서는 일상의 모습으로 소박하고 밝은 표정으로 시종 사양하시다가 간청에 겨우 말씀을 주셨다. 그 일부를 여기에 싣는다.
- 이번에 영축총림이 된 것은, 통도사의 기쁨은 물론, 한국불교의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축총림의 어른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여 가실지 그 방향을 좀 말씀하여 주십시요.
-방장스님 : 총림이 되었다고 해서, 당장 모든 제도와 인물이 바뀌어지는 것도 아니고, 집도 그대로이고, 모든 것이 그대로 아닙니까? 물론 여러가지 면에서 달라져야겠지요. 총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법(如法)히 수행하는 스님네가 많이 모이고, 부처님의 근본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과, 그리고 총림의 근본 정신인 청규(淸規)가 있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마치 나무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새로이 무슨 별난 법을 만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래(古來)로 내려오던 선사(先師)들의 좋은 법을 이어 가야겠지요. 그 위에다, 또 좋은 법이 있다면 물론 따라야 하겠지요.
-방장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수행하실 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고, 아울러 젊은 수행자가 어떻게 수행정신을 세워서 수행해야 하겠습니까?
-방장스님 : 우리는 처음 선방에 나갈 때, 만공(滿空)스님과 한암(漢岩)스님 아래에서, 공부를 했지요. 그 당시에는, 이 두분이 대표적인 선지식이었지요.
그러나, 수좌들 끼리 몇씩 모여서 선지식이 없어도 서로 경책하면서 정진했습니다. 그래도 참 열심히 화두들을 들었지요. 그저 공부에만 열중했지, 다른 것은 일체 몰랐지요. 이제나 옛날이나, 선지식 밑에 있다고해서, 더 공부가 잘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참선이란, 선지식이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선지식 밑에 있어도, 자기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요즘 수좌들은, 너무 잡사(雜事)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선방 운영이나 살림살이 하는데도 관계하려고 하고, 옛날에 비하면 환경이 많이 좋아졌으며 풍족하고 대중공양도 많고…, 그런데도 불평이 많고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하러 선원에 왔는지, 목적의식이 없는 것 같을 때가 많아요. 그럴 경우에 일일이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목적의식과 발심을 해야겠지요. 우리는 잘 입고 잘 먹을려고 수도인이 된것이 아니니까, 진정한 발심만 하면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런 것이 흐름처럼 되어 있지만, 아뭏튼 스님네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왜 화엄경에 신(信)은 공덕의 어머니라고 있지 않아요. 앞으로는 승가(僧伽)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되겠지요.
-통도사는 불지종가(佛之宗家)요, 국지대찰(國之大利)입니다. 그리고, 또한 근본율종도량입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좋은 일화(逸話)라든가, 또 후래에 내릴만한 규범 같은 것은 없는지요?
-방장스님 : 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 자장율사같은 분이 여기에 처음으로 금강계단을 세우고 스님네를 처음으로 만드는 계를 주었고, 지금도 뭐 그런 전통은 내려오지만 요사이는 금강계단도 워낙 많으니까 통도사만의 자랑이라고도 할 것도 없고 통도사 스님네가 딴데 비해서 또 뭐 특별나게 수도를 한다면 모르지만…. 다 대동소이 하지요. 물론 일제시대에는 사법(寺法)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큰스님이 계시면 그 큰스님의 덕화로 사원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러니 훌륭한 스님네가 많이 나와야겠어요.
-현대는 굉장히 복잡하고 물질주의적 비인간적 시대라고들 합니다. 이 현대를 살아가는 불자들을 위해서 한 말씀해 주십시요.
-방장스님 : 사회는 그전에 비해서 자꾸 발달되어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질이라던가 과학이 발달되었다고하여 정신까지도 발전 되었다고는 볼 수가 없지요.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지요. 그 욕망을 채우므로써 그것을 해결할려고 하면 오히려 더욱 더 깊은 욕망의 노예가 되리라고 봅니다. 가령 절 집안만 보더라도 물질이 풍족해지면 풍족할수록 정신이 해이해지고 질서가 없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성이 물질을 지배해야 하는데 오히려 물질이 주인이 되어 그 가치가 전도된 때문이라고 봐요. 또 과학 문명이라고 하는 것도 T·V나 라디오가 너우 오락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에 감각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고 보지요. 그러니 내 개인생각으로는 절에는 T·V 같은 것이 있는 게 벨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자유, 자유하는데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지요. 오히려 지킬것을 지키고 사람답게 행동함으로 양심에 가책됨이 없을 때 진정한 자유가 나온다고 봐요. 절집으로 보면 예불 공양과 같은 대중적으로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면서 살아야지요. 그전에 내가 강당에 있을 땐 한 사람이라도 예불 공양에 빠지면 공동으로 참회를 해야 하니까 여간해서는 빠질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입승스님이나 강사스님은 정말 하늘 같았으니까요. 요새는 선지식이 되기 쉬워요. 왜냐하면 잘하는 사람은 밥에 뉘 같으니까요. 그전에는 워낙 다 잘하니까 여간 잘해서는 잘 눈에도 안띄었어요. 그러므로 물질의 발달과 정신의 발달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요. 오히려 퇴보이면 퇴보이지…. 또 옛날보다 세상에도 법이 많고 까다워지니까 지켜야 할 법도 워낙 많고 너무 세상이 복잡하고 점점 수행은 어렵게 되어 가는것 같아요.
-지금 종단에서는 제도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방장스님 :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겠지요. 제도는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머리를 짜고 협의를 해 놓아도 그것을 운영하는데에서 새로운 병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공동으로 다 맞는 제도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제도가 나빠서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시행하는 사람에게 더 큰 허물이 있다고 봅니다. 확실한 것인지는 몰라도 l0년 임기라던가 재산 관리같은 말썽날 소지가 많은 것은 더욱 신중하게 개혁되어야겠고, 특히 교육과 인재양성 문제같은 것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리라고 봅니다.
-끝으로 스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방장스님 : 별로 크게 아픈 데는 없이 건강합니다.
-오랫 동안 대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많은 법우(法雨)를 내리시어 영축총림을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 휘호를 하나 부탁드렸더니 이런 글귀를 써주셨다.
「막평타인 불긍자기」莫評他人 不矜自己
「남의 허물을 평하지 말고
자기를 들어내어 자랑치 말라」
(대담 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