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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식과 교황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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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현기 1984년 05월 27호
일반적으로 종교가 비종교화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에는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교의 진리가 역사의 초월성만을 강조하여 현실을 종교적 이상세계에 절대 복종시키려함에 있음이요. 둘째는, 종교의 실천 혹은 행위가 집단 조직의 기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라는 조직을 위한 신앙으로 변모하게 되었을 때 종교는 사회적으로 견고한 우상으로 전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스스로의 종교정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늘상 살펴보아야 하고 그 사회의 전체와 부분에(민족과 개인) 명확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또한 종교적 신비란 삶이 구체화되지 못하거나 종교의 실천이 비형태화(非形態化) 되어졌을 때 더욱 풍부하여질 수밖에 없으므로, 종교인은 올바른 종교정신을 역사의식(歷史意識) 속에서 심어야 한다.
한국과 같이 단일민족의 다종교 국가에서는 종교간의 갈등이 곧 민족분열로 직결되기 때문에 각 종교나 종교인은 선교나 포교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타종교에 대한 현상적 비판은 삼가해야 한다. 또한 정부지도자는 특정종교의 탄압이나 지원을 삼가해야 하고 서로간에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황이 온다고 한반도 곳곳에서 환영의 외침이 높다. 그러나 민족의 일원으로서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교황이 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여러 가지 요인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이번 교황이 방문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를 맞이하는 입장이 정부가 특정종교에 대한 지원이라는 인상이 짙음을 볼 수 있다.
교황이 단순한 종교적 방문이라면 정부가 수 차례의 특사를 파견하여 초청할 필요가 없다. 이웃 일본의 예를 들면 교황이 방일을 희망했을 때 일본정부는 그 서한을 되돌려 보내면서 종교지도자들에게 초청을 의뢰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수 차례 정부특사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방문 허락이 무슨 대단한 승리인양 보도함으로써 민족국가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국민에게 국가권력이 특정종교에 대한 지원의 인상을 짙게 했다. 여의도 행사 단상을 수억원을 들여서 만들어줄 뿐 아니라 정부관리들의 공공연한 교황환영 준비를 지시하였다. 교황이 설령 국가원수의 자격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종교 지도자인 이상 이런 식으로 환영행사를 지원하는 것은 종교간의 균형적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잘 못하면 종교간의 갈등을 초래하여 국민화합을 깨뜨릴 위험이 높다. 몇 년 전에 만원권 지폐에 석굴암 불상을 넣을려고 했을 때 기독교인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는 그 계획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교황방한을 위해 기념주화 및 기념담배를 만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런 사대주의적인 발상은 민족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해치며 결국 문화적 식민주의를 초래한다. 선진조국이 서구화를 뜻해서는 안된다. 어느 일간지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비로소 한국도 선진 기독교국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고 논평했다. 소수의 유학생 출신들의 언론인 학자 관료들의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을까? 개화파가 잘못하여 친일파가 되었듯이 현재의 선진화가 서구종속을 영구화시키는 식민주의 문화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카톨릭인들도 이러한 정책에 동조하여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식의 정책과 정치적 측면에 깊이 유착되었을 때 종교는 집단 권력형이 되어질 수 밖에 없으며 끝내는 어용적 대상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방문일자가 초파일과 겹친 사실이다. 초파일은 이미 불교인의 행사이지만은 않다. 이날은 민족전체의 축제날인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황청의 사정에 의해서, 음력일자를 잘 몰라서 그랬다고도 하는데 교황이 도대체 이 민족에게 무엇이기에 그의 사정에 따라 방문국 사정은 무시되어야 하며 특히 종교적 방문을 강조하면서 어찌 그 나라의 다른 종교 사정은 무시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민족의 구성원인 정부관리와 지도력 지도자가 음력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셋째는, 매스컴의 편향적 보도이다. 이미 한국의 언론이 죽어 버린지 오래라고 믿기에 지적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연출하는 보도는 특정 종교를 옹호한지 이미 오래이다. 신흥사 사건의 확대 보도와 “기도원 살인 사건”의 보도 침묵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넷째는, 교황과 레이건의 만남이다. 이것은 어쩌면 대중공의 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서 한국을 이용하려는 뜻이 아닐까? 아니면 한국내의 여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함인가. 전자의 이야기는 거론할 필요도 없으며 후자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세의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강대 세력에 지배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교황이 다녀간 폴란드, 필리핀, 엘살바도르, 북아일랜드등은 교황이 다녀감으로 더 큰 후유증을 앓고 있지나 않는지. 이 외에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카톨릭인들의 제주도 양민 학살사건, 황사영의 백서사건등 반 민족적 행위라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데 어찌 그들이 이제와서 종교의 울타리 밖으로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이런 식의 행사는 이 민족의 장래에 불행을 초래함과 동시에 참다운 정치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시냇물 소리가 그저 물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민족 비애의 울음소리로 들린지 이미 오래다. 진정 한반도의 역사가 우리의 손에서 꿈틀거릴 그 때는 언제 오려는가. 민족의 현실 앞에 전불교도는 과거 역사의 참회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발원으로 오늘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초파일을 맞이하여 민족의 어두운 곳에 광명이 내리길 갈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