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가풍(淸白家風)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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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가풍(淸白家風)의 향기 - 일타
1984년 05월 27호
좌선(座禪)의 생명은 화두(話頭) 즉 공안(公案) 드는데 있는 것이다. 화두란 말은 언어 이전의 소식 즉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한 이치를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산회상(靈山會上: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중 인도 마칼타국의 왕사성 부근의 기사굴산) 에서 세존이 염화시중(鹽花示聚 : 석존이 영산회상에서 말없이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 일 이때 가섭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고 웃었다는 이심전심의 고사(古事)에서 나온 말) 하신 일 같은 것은 선종(禪宗)에서 제일공안(第一公案)이 된다. 세존은 어째서 꽃을 들어 보이셨을까? 하고 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일체의 분별심(分別心)을 붙이지 말고 온 몸과 참정신으로 생각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 화두 하나로 번뇌를 해탈하고 지혜를 획득하는 불조(佛祖)의 공도(公道)가 되고 방안이 되기 때문에 공안(公案)이라고도 한다.
좌선 공부에서 첫째 주의할 것은 두뇌(頭惱)로 생각을 모으지 말라는 것이다. 온몸의 힘을 아랫배에다 두어 척양골(脊梁骨)을 일조(一條)의 철주(賣柱)와 같이 뻗혀 세우고 하복부를 태산 (泰山)과 같이 든든하게 내밀고서 여기에다 화두를 잡아 붙여 의단(疑團)을 만들어 공부를 착실하게 해 나아가면 가슴은 저절로 호연(浩然) 해져서 걸림이 없게 되고 대담해지고 여유가 생기고 성급해서 참을성 없던 자도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취미가 생기게 되고 절제(節制)하고 근후(護厚)한 덕성이 키위지는 것이다. 이러한 광대 (廣大)하고 심원(深遠)한 효능(效能)은 각자의 노력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흔히 이르기를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맛있는 산해진미(山海珍味)의 음식을 보면 타액(睡被)이 분비함을 느끼고 수화폐월(羞花閉月:꽃이 부끄러워 하고 달이 숨을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미인을 만나면 연정 (戀情)이 일어나고 부귀영화한 사람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게 되고 부운같은 명예를 얻으면 갑자기 하늘에라도 오른 느낌에 우쭐하는 등 무상전변(無常輾變)하는 인간처세(人問處世)에 일희일비(一喜一悲) 일득일실(一得一失) 이 모두 심적 활동력을 낭비하는것 뿐이다. 선(禪)은 이러한 마을을 안정시켜 그 중심을 향해 적집(積集)해서 심력(心力)을 허비하지 않고 축적(蓄積)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신골수(全身骨廠)에 충새(充塞) 했을 때 천파만랑(千波萬浪)에도 휘둘리지 않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하여 동 (動)하지 아니하며 임운우공용 (任運無功用 : 자기의 힘으로 조작하지 아니하고 일이 저절로 되는것을 말함)으로 십이시(十二時) 를 사득(使得) 한다는 시공초월 (時空超越)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안창구(公案參究)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선방생활이 어떻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인가를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선방(禪房)에서 공연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도덕적 (道德的), 정신적 (精빼的) 무한한 능력을 개발시키고 또 우주의 대진리와 인간의 근본 생명체인 진아(眞我)의 발견과 완성을 위하여 진실로 자기 존재의 본질(本質) 을 터득 할 때까지 이와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수련(修練)하며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말로 표현 되어져야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구태여 이 도리 (道理)가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학문 예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또 벗어남이 없다는등 세인(世人)의 입에 오르내리어 적당한 빛을 보아 평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알아 주거나 몰라 주거나간에 이 도라는 생명의 근본이요 바탕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궁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너무나 밖을 향해서 치달리는 현대 사상과 속 없는 현실 생활의 모든 경향(碩向) 속에서 실(突)을 찾는 작업인 선수행 (禪修行)의 의의를 조금쯤 인식(認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해인사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