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뚫고 나가려는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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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설명 - 편집실
1984년 04월 26호
신찬(神贊)
신찬(神贊)은 중국 북주에 있는 고령사(古靈寺)에서 계현(戒賢)법사를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그의 스승은 그 절의 강사로 자기 제자인 신찬에게도 훌륭한 강사가 되어 자기의 맥을 이어주기를 기대하고 열심히 경전을 가르쳤다. 재주가 비상한 신찬은 오래지 않아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었다.
불교의 경전을 어느 정도 섭렵한 신찬은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의 큰 일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루는 스승에게 인사드리고 자기의 뜻을 밝혔으나 스승의 태도는 냉담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바랑을 짊어지고 몰래 도망하여 백장(百丈 : 중국 당나라 스님. 총림을 처음 개설하고 백장청규를 만들어 선종의 규칙을 제정하였다) 문하에서 수년간을 불철주야 피눈물나는 정진을 하여 드디어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였다. 대도(大道)를 성취한 그는 자기를 처음 입문시켜 불경을 가르쳐주고 지극히 아껴준 스승인 계현법사의 은혜를 생각하고 스승이 계시는 고령사로 돌아왔다.
-너는 나를 떠나서 여러해 동안 소식이 없더니 그 동안 무슨 소득이라도 있었느냐?
스승은 오랫만에 돌아온 신찬을 반가워하면서도 이렇게 힐문하였다.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무엇을 얻을 것이 있으리오마는 참뜻을 알아 듣지 못한 스승은 신찬이 허송 세월만 하고 돌아왔다고 실망한 나머지 절에서 천한 일이나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신찬은 아무 불평도 없이 나무를 하고 마당을 쓸며 공양주를 도와 물도 긷고 불을 때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은 신찬에게 목욕물을 데우게 한 후 등을 좀 밀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시키는 대로 등을 밀어주고 나서 스승의 등어리를 가볍게 한 대 치면서 중얼거리기를,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군 (好好佛堂 佛無靈驗)
이 말을 들은 스승은 괴이하게 여겨 뒤를 돌아다보았다
-부처가 영험은 없어도 방광(放光)은 할 줄 아는군 (佛雖無靈 且能放光)
신찬은 거리낌 없이 뒤돌아보는 스승을 향해 또 중얼거렸다. 이때 스승은 자기 제자인 신찬이 심상한 인물이 아닌 것을 언뜻 짐작하였다.
계현법사는 나이 80이 가까우되 평생을 경전만을 보아 왔는지라 한결같이 서창아래 놓인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종이가 뚫어지도록 경전만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꿀벌 한 마리가 방안에 날아 들어와 다시 나가려는데 반쯤 열린 곳은 비켜놓고 꼭 닫혀 있는 창을 향해서 나가려고 문에 탕탕 부짖히며 애를 쓰고 있었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신찬이 스승에게 들으라는 듯이 시(詩) 한 수 지어 읊었다.
활짝 열어놓은 저 문은 마다하고
굳게 닫힌 창문만을 두드리는구나
백년동안 경전만을 들여다 본들
어느 때에 깨치기를 기다릴 건가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投窓也大痴)
백년찬고지(百年鑽古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이 시를 들은 스승은 보던 경전을 덮고 신찬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 나는 네가 나가서 허송 세월만 하고 돌아온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네 태도가 요즘 범상치 않으니 그동안 누구에게 가서 어떤 법을 배웠느냐?
- 스님! 무례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실은 그 동안 백장선사 법좌(法座)에서 불법의 요지(要旨)를 깨닫고 왔습니다만 돌아와 보니 스님께서는 아직도 참 공부에는 뜻이 없고 여전히 문자에만 골몰하심을 보고 민망하였으나 권하여 들으실리 없는지라 버릇없는 말씀을 누차드려 참다운 발심(發心)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오! 기특한 일이로다. 네가 비록 나의 상좌(上佐)이지만 공부로는 나의 스승이니 지금부터 백장스님을 대신하여 나에게 불법을 설하여다오
하고서는 북을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한 후 법상을 차려 설법하게 하였다. 위의를 갖추고 엄숙하게 법상에 오른 신찬은 대중을 둘러보고 나서 영광이 홀로 빛나 근진을 벗어나니 진상이 드러나 문자에 걸림없도다.
심성은 물듬이 없이 스스로 원성하니 단지 망연만 여의라 이것이 부처니라.
영광독요 형탈근진(靈光獨覆 週脫根塵)
체로진상 불구문자(體露頁相 不抱文字)
심성무연 본자원성(心性無緣 本自圖成)
단리망연 즉시여래(但離妄緣 卽是如來)
법상 밑에서 자기의 제자인 신찬의 법문을 경청하던 계현법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내가 어찌 늙으막에 이러한 무상의 법문을 듣게 될 줄을 기약했으리오?
스승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 보다가 제자로 인하여 허공의 밝은 달을 바로 찾아본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