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치우친 이해 태도
첫째, 이원적인 삼법인의 이해 태도는 동국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부 불교학자들의 불교개론서나 논문에 나타나는 견해들이다. 즉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은 현상계의 측면이고 열반적정은 이상계라고 주장한다거나 또한 십이처 (十二處)와 업(業)등은 세간법의 체계이며 유위법(有爲法)으로서 조복되고 대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견해는 오온 십이처 십팔계등 제법의 시설(施設)이 전변설과 적취설을 지양하여 중도를 보이기 위한 논리형식임을 모르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불타께서 일체(一切)가 무엇인가를 묻는 제자에게 눈과 빛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뜻과 법의 열두가지 입처(入處)로서 보이신 뜻은 무엇인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오직 현상적인 존재만을 말씀하심으로써 초월적인 실재자를 부정하고 다시 주관과 객관, 물질과 마음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보이심으로써 중도를 들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이처는 연기 (緣起)이므로 공(空)한 것이요, 공한것이므로 중도인 것이니 십이처를 실체화시키는 망집(妄執)만이 조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요, 망집이 사라지면 십이처가 곧 중도제인 것이다.
다음 열반을 부정하는 견해는 무아(無我), 무상(無常)을 철저히 사회적 관계와 역사 과정만으로 해석함으로써 생명의 전체성과 영원성을 사물화 된 관계와 자정성 가운데 매몰시켜 버리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 존채를 역사주의와 전체주의에 종속시켜 버림으로써 필연은 필연 그 자체에서 초극해버리는 삶의 본질적 자유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3) 중도적 해설
위에서 생명의 참모습에 부합된 실다운 인식의 빛(如室知)을 가로막는 두가지 치우친 견해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삼법인에 대한 중도적 이해의 입장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생명의 중도적 본원에 귀착하지 못하고 연(緣)을 쫓아 일고 지는 세간성을 실체로서 국집하는 중생에게는 무아(無我)의 말씀으로 본래 기멸이 없는 생명의 본체를 보였으며, 다시 제법이 무아한 생명의 본체를 국집하여 공(空)에 빠진 중생에게는 제행이 무상하다고 설파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잡아함경 안무상경 (眼無常經) 에서 눈이 덧없다한 뜻과 법화경에서 눈이 영원하다. (淸種常眼)한 뜻이 둘이 없는 것이다. 이와같은 중도의 진실과 본원에 귀착하여 상(常)에도 무상(無常)에도 머물지 않을 때 인간은 세간과 출세간의 집착에서 모두 벗어나 열반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며 역사와 사회를 해방된 진리의 사회로 전환시켜갈 수 있는 대비(大悲)의 사람이 될수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