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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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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4년 04월 26호
영국이 시인 T.S 엘리옽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 했다. 전쟁과 문명으로 인하여 차츰 비인간화 되어가는 유럽의 황폐화를 보면서 죽음으로 생긴 공허한 추억을 안고 피어나는 4월의 라일락은 그 개화의 화려함을 즐기기에는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더욱 간절해 졌으리라.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무수한 희생 위에서만 가능해지게 되어 있는 자연의 섭리에 우리들은 엘리홑처럼 절망하는 것은 아닐까?
탄생은 늘 길고 묵은 고통을 수반할때에만 가능한 것-움트기 위하여 나무들은 우울한 겨울 날들을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또 사람들은 얼마나 회색빛 도회의 길을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는가? 이 찬란한 봅을 맞이 하기 위하여……
그러나 누구에게나 봄이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랑캐의 땅에 봄이 와도 봄이 온 것이 아니라고 읊었던 어느 시인의 시처럼 진정 우리네 마음에 봄이 오지 않은 사람들에겐 봄은 오히려 서글퍼지는 계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외형적이고 육체적인 삶만이 풍요로워진다고 하여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어지럽고 귀찮을 때에는 딴 사물이 화려하면 할수록 우리는 상대적으로 더욱 서글퍼짐을 느끼는 때가 가끔 있다.
오월에 한국에 교황이 온다고 g나다.
그리고 모둗르 참 기쁘고 축복 된 일이라고도 한다. 한국 전래의 200주년을 맞는 카토릭 교회는 물론 모든 국민이 기뻐해야 할 일들이라고 한다. 나라에서도 국빈을 맞이 할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으며 88년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로써 세계의 이목도 집중시켜 올림픽 유치에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들 좋아한다. 교홍의 방문기념으로 기념주화도 만들고 한국의 순교도들에겐 성인의 칭호로 주어진다. 물론 이교도인 불교계의 종정 스님게서도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한편으로 쓸쓸해지고 소외감이 들까?
분명히 기쁜 일이고 좋은일인데… 중생들의 기쁨을 같이하라고 하는 것이 보살행의 가르침일진댄 어째서 그런 마음에 슬픈 감정이 드는 걸까?
그것은 우리 불교계가 남의 잔치에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얻어 먹고 박수를 치고 있기에는 너무나 우리에겐 아득한 산이 많이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가 우리를 우울하게 g나다. 또 우리 스스로의 거리감과 밖에서 오는 소외감을 무엇으로 메꾸어야 할지 자못 걱정스럽다.
-이 갑자년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