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스님과 야호(野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선의 어록 - 편집실
1984년 04월 26호
중국 백장야호(百文野狐)
저 유명한 선승(720-814)백장해회 스님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늘 청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가면 그 노인도 역시 물러나곤 하더니 어느 날은 설법이 끝나고 대중이 다물러났는데도 이 노인만이 버티고 서 있었다.
백장스님은 이상히 여겨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때 노인 말이 「저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옛적 가섭불의 제세시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그때 어느 학인이 묻기를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이에 제가 대답하기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不落因果)라고 했기 때문에 5백년 동안 야호(여우)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청컨데 스님께서 자비로써 일전어(一轉語)를 내리시어 야호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십시오」하고 다시 묻기를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이때 백장스님이 「인과에 매(味)하지 않느니라(不味因果)」라고 가르쳐주자. 그 말끝에 대오하여 인사하고 말하기를「저는 이미 야호의 몸을 벗어나서 뒷산에 있으니 스님께서 부디 죽은 스님들과 같은 모습으로 장례를 치러 주시오.」
백장스님은 유나(당내를 지도하는 사람)로 하여금 대중에 고하기를 식후에 죽은 승의 장례가 있다고 했다. 이때 대중이 수군거리기를 「대중이 모두 평안해서 열반당에는 한사람의 병자도 없었는데 어째서 죽은 승의 장례가 있다고 할까」 식후 스님은 대중을 데리고 뒷산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야호를 끄집어 내어 화장을 했다.
백장스님이 저녁에 법당에 나와 전의 인연을 들었다. 이때 황벽 수좌가 얼어나서 「고인이 그릇되이 대답하여 5백생 야호의 몸이 되었다는데, 만약 그릇되이 대답 안했더라면 무엇이 되었을 것입니까」 하니, 백장스님께서 말하기를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스님의 뺨을 한대 후려 갈겼다. 스님은 박수치며 웃어가로되 과연 그렇구나 「오랑캐의 수염은 붉다했더니 붉은 수염의 오랑캐가 있구먼……」
〈무문관(無門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