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에 햇빛이 그립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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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택
1990년 08월 102호
올해는 기상대의 예보와 같이 긴 장마와 무더위가 겹쳐 여간 짜증스럽지 않다.
긴 장마로 인하여 여러 차례 해인사 동구길을 보수하였지만 간혹 큰 차가 지날라치면, 온통 길은 뻘천지가 될 뿐만 아니라 목조건물의 곳곳에 푸릇푸릇하게 곰팡이가 끼고, 잘 마르지 않은 광목옷에서 나는 습한 냄새 등 작은 일상(日常)에서 느껴야 되는 불편하고 언짢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잖아도 여름은 습도가 높고 불쾌지수 또한 높은 계절인데 작년 여름에는 무슨 무슨 회사와 노조 사이에 작은 쟁의(爭議), 큰 쟁의로 온통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해서 불안하더니, 올해는 정치권이 야단이다. 국회가 무슨 권투 시합장인지 날치기 법안의 통과 발표장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모모 국회의원이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모모 의원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등 국민에게 보여주는 선량(善良)들의 추태가 말씀이 아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나빠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을 온 국민들이 다 보는 소위 황금시간대에 텔레비젼에서 다 비춰주니, 산골에서 정치와는 별무(別無)로 사는 우리들 눈에도 좋지 않게 보이는데, 요즈음 같이 식자(識者)들이 많은 아랫동네〔世俗〕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말하지 않아도 훤한 일이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날치기 통과니 국회 내의 폭력 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면역은 되어 있지만, 요즈음 무엇이든지 극한(極限)으로만 달리고 있는 세태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대화부재(對話不在)니 불신이니 하는 풍조들이 현대가 겪는 전체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번 파행정국의 근본원인이 극단적인 사고(思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극단은 언제나 진리가 될 수 없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흑백논리의 노예가 되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경직성과, 내것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대화를 어렵게 만들고 극한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대화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는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소신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인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150회 임시국회에서의 모습들은 처음부터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려고 하는 노력도 의지도 없었으며, 동시에 야당은 여당의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는, 그러므로 아예 듣지 않을테니 설득할 필요없이 날치기로 통과하자는 여당의 방식과 무엇이든 틀려먹은 여당의 의견이므로 극력 저지로만 맞서는 양극단만이 존재하여 결국 파행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급기야는 야당 국회의원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기에 이르고 장외(場外) 투쟁으로 돌입하고 있는데 이런 정치불안의 틈바구니에서 결국 누가 피해를 입느냐 하면 결국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들은 장바구니의 현실적 물가가 하루가 다르다는데 이런 정치불안이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보기 어렵다.
지루한 장마에는 햇빛이 그립듯이 한국 정치무대에 현명한 중도(中道)의 정신이 아쉽다. 언제나 정의가 실현되는 데에는 아집과 독선, 그리고 이기심을 버리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며, 아집과 독선과 이기심을 버리는 데에는 상대방의 형편을 살피고 의견을 존중하며 지신의 욕망을 자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가장 쉽고도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면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겸허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