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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義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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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0년 08월 102호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더불어 신라의 가장 유명한 고승이다. 스님은 신라 진평왕 47년 서기 625년에 경주에서 한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에 황복사(皇福寺)에 출가하여 일찍부터 화엄학에 뜻을 두고 당나라로 유학을 희망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37세에야 비로소 입당(入唐), 그 당시 중국 최고의 화엄의 대가 지엄(智儼)화상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지엄화상의 문하에는 기라성(總羅星) 같은 고승들이 많았다. 훗날 중국 화엄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법장 현수(法藏玄首)를 비롯한 여러 대가들이 있었으나 의상스님은 단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저서로 알려진 것으로는 아주 극소의 것만 전해지지만 그 뜻이 높기로 유명한 법성게(法性偈)를 비롯한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은 아주 간결하면서도 그 뜻은 무한히 깊다.
그 당시 스님은 국제적인 정세로 당의 고종이 신라를 침략하려 하매 서둘러 귀국하여 호국의 염(念)을 일으킨 애국자이었으며, 신라에 화엄의 교화를 펴니 태백산의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이 그것이다.
부석(浮石)이라는 말 속에는 사실 의상대사의 지순한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다. 의상대사가 중국으로 갔을 때 잠시 중국 산동성의 등주(登州) 적산 법화원에 머물렀다.
그때 잠시 선묘(善妙)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스님은 학문연구에 몰두하느라 종남산으로 떠나 잊고 있었지만, 선묘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사모의 정은 한 자루의 꺼질 줄 모르는 춧불이었다. 오직 의상스님을 사모하는 정으로 스님께 드릴 옷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것도 모르는 채 신라를 향한 배를 타고 서둘러 떠나고 있었다. 선묘는 그 소식을 듣고 스님께 옷을 드리기 위해 달려왔으나 이미 배는 저만큼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옷상자를 바다에 던지고 발원과 함께 몸을 던져 바다의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수호하니 그 용이 곧 부석사의 호법룡(護法龍)이며, 부석사에 의상대사가 가람터를 잡으려 함에 못된 무리들이 방해하므로 선묘의 정법수호의 염(念)은 곧 사방십리 넓이의 큰 돌이 되어 공중에 떠서 사악한 무리들을 쫓아내어 가람을 이룩하니 화엄의 근본도량 부석사이다.
의상대사는 그 이후 이 땅에 화엄학의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그 학파가 천여 년에 이르렀는데, 스님이 남긴 학문적 업적과 함께 신앙적 실천은 온 불교도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