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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신해품(信解品)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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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0년 08월 102호
·죽는 줄만 여긴 아들
마침내 아버지의 집에 오게 된 아들은, 대문가에 발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그 아비 사자좌에 걸터앉아서 보배궤짝에 두 발을 놓았는데, 여러 바라문·찰리(刹利)·거사(居土)가 다 그를 공경하여 에워싸 모셨으며, 진주의 영락―천만량(兩)은 나가는 것으로써 그 몸 치장했으며, 일꾼·하인이 손마다 백불(白佛) 들어 좌우에 시립(持立)했으며, 보장(寶帳)으로 위를 덮고 여러 화번(華幡) 드리웠으며, 향수 땅에 뿌리고 여러 꽃 흩었으며, 보물 늘어 놓아 내고 들여서, 이리도 갖가지로 치장한 속 위엄 대단하거늘……”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다. 가난뱅이 아들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1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는 왕이거나 왕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겁부터 냈다. 그러고는 여기가 결코 자기 같은 천인의 머물곳이 못되며, 우물대다가 잡혀서 강제노역이나 당하게 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러자니 마음놓고 품팔이를 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을들이 새삼 그립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발을 돌려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 쪽에서는 자기의 아들임을 이내 알아보고, 크게 기뻐해 ‘이제야 내 재물을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취한 조치에 대해 경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 곧 보내 급히 쫓아가 데려오라 시키거늘, 그때 사자(使者) 빨리 달려가 이를 잡으니, 아들 원통타 하여 크게 외치되, 잘못한 것 없는데 왜 잡는가 하거늘, 사자 더욱 다급히 잡아 끌어왔나이다.”
그러자 아들은 죽게 되는 줄만 여겨 기절하는지라, 얼굴에 냉수를 뿌려 깨어나게 한 다음, 마침내 석방해 주었다는 것이다.
꽤 길게 전개된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일찍이 천태대사는 이 궁자유를 근거하여 오시(五時)의 교판(敎判)을 세운 바 있거니와, 그런 견지에서 바라볼 때 이것은 화엄시(華嚴時)에 획이나 잘 어울리는 듯 느껴진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비유의 어떤 점이 그런 판단을 이끌어내게 했던 것일까.
첫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왕이거나 왕 같은 사람이라’ 여겨진 아버지의 위엄이다. 요즘의 불교학의 견지에서라면 화엄경도 법화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중간쯤에 만들어진 경임에 틀림없으려니와, 경의 표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서는 한, 성도 직후의 최초의 설법이 화엄경이다. 그러므로 무대는 적멸도량(보리수밑)이요 주인공은 이제 막 성도하신 석존이시다. 그러나 어느 결엔지 보리수 밑은 금강석으로 이루어진 도량으로 바뀌어 있고, 석존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 되어 계시다. 그리하여 비로자나불의 절대적 위신력이 온 우주를 하나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만드는터이니까, 부처님의 그 같은 위엄이 ‘왕이거나 왕 같
은 사람이라’ 하여, 도망치고 싶은 충격을 주었다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둘째는 ‘곁에 있는 사람을 보내, 급히 쫓아가 데려오라 시키거늘, 그때 사자 빨리 달려가 이를 잡았다’는 표현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란 부처님 곁에 있음을 뜻하므로 대보살이라야 이 말에 어울리거니와, 이것 또한 화엄경의 성격과 일치한다. 화엄경에는 부처님의 설법이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니, 부처님은 오직 침묵하신 채 미간이나 치아사이나 발가락 같은 데서 이따금씩 광명을 발해 온 세계를 비추실 뿐이나, 그때마다 보살들과 천신들이 위신력을 입어 부처님을 대신해 법을 설한다. 진리 자체인 법신불이시매 설하실 수 없으신 것이며, 이 끝 모르는 깊이의 침묵이야말로 더 없는 설법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살들을 시켜 설한 가르침이므로 ‘곁에 있는 사람을 시킨’ 것이 되려니와, ‘급히 쫓아갔다’느니 ‘빨리 달려가 이를 잡았다’느니 하는 말은 그것이 돈교(頓敎)였음을 시사한다. 화엄경에도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로 나누어 보살의 수행을 단계적으로 설한 면이 없지도 않으나, 그 주류를 이루는 것은 마음이 곧 부처님을 알아 대번에 깨달음을 생취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아들이 발버둥치다가 기절하매 이를 석방한 일이다. 화엄경은 아무런 준비과정도 거침이 없이 대승 중의 대승이라 할 수 있는 높은 교리를 바로 설하신 법문이다. 그러므로 대보살들에게나 통할 가르침이어서, 이 경의 후반부로부터 끼기 시작한 성문들로 볼 때는 뭐가 뭔지 분간조차 해내지 못했던 것이니‘귀머거리 같고 소경 같았다〔如聾如啞〕’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놓아보낸 것은, 일반 중생에게는 성과 없음을 아신 부처님께서 대승의 교화를 일단 중지하신 것이 된다.

·똥을 치우는 일
아들은 석방되자 좋아라고 아버지 집을 떠나 빈촌으로 가버렸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만은 없으므로, 방편으로 유도하리라 마음먹은 아버지는 ‘몰골이 파리하고 위엄이란 없는’ 두 사람을 아들에게 보내면서 지시한다.
“너희 거기 가서 조용히 그 자에게, 이에 일자리 있으니 네 갔을 곱으로 주리라 하고, 좋다거든 데리고와 일을 시키라. 만약에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거든, 이르되 너를 써서 똥을 치우리니, 우리 둘도 너와 함께 일하리라 하라.”
이에 그 제의에 마음이 솔깃한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 집에 와서 똥을 치운다. 그리고 겨우 끼니를 때울 정도의 갔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여 이십년 동안 그 일을 계속하니, 아버지는 그의 성실함을 칭찬한 끝에 이름을 지어 주어 아들을 삼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위엄없는 두 사람은 소승의 성문송과 연각승이니, 앞의 곁에 있는 사람이 보살이었던 것에 비해 소승의 가르침이기에 ‘몰골이 파리하고 위엄이라곤 없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또 ‘똥을 치운다’ 함은 번뇌를 제거함이니, 번뇌야말로 마음을 더럽히는 ‘똥’이기 때문이다. 소송의 가르침인 사제(四諦)에서는 번뇌로 인해 생사의 고가 생긴다 단정하고, 그러기에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것에 해 생사의 고가 다한 열반에 들 것을 역설했다. 그러기에 소승의 소위 칠현칠성(七賢七聖)은 똥을 치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니, 그 성실함을 인정한 끝에 ‘이름을 지어 주어 아들을 삼았다’ 함은, 사제의 진리를 바로 깨달은 견도위(見道位)거나 사혹(思感)마저 끊어서 아라한이 된 무학위(無學位)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원래가 장자의 아들이었으므로 그런 사실을 자각만 하면 아버지의 재산이 다 제 것이듯, 본디 불자(佛子)임을 확신만 하면 그 순간부터 불법은 다 자기의 것이어서 새삼 수행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믿음이 못미친다〔自信不及〕’고 임제선사가 지적했듯, 실제로는 자신이 곧 부처임을 믿지 못하는 데서 번뇌를 제거하는 것에 의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따위의 차별의 경계에 떨어짐이니, 똥을 치우는 것에도 뜻이 없는 것은 아니라 한대도 대부호의 자식으로서 이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러나 이것이 숨길 수 없는 범부의 실정인 바에는 똥 치우는 것에 비유된 사제의 교화는 필수적이었으니, 오시(五時)에서 볼 때는 아함경이 설해진 녹원시(鹿苑時)에 해당한다.
여기서 화염시와 녹원시를 비교하자면, 이를 것도 없이 대승의 극치를 가는 화엄경은, 소승의 사제밖에 설하지 못한 녹원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녹원시의 아함경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되지 않으니, 일반 중생에게 있어서는 자기들의 근기에 맞추어 설해진 아함경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가르침이었다 해야 한다.
일광삼조(日光三照)를 기준한다면, 화엄경은 아침의 햇살이 먼저 높은 봉우리를 비추는 것과 같고, 아함경의 가르침은 햇살이 다음으로 깊은 골짜기〔幽谷〕를 비추는 것에 비유된다. 히말라야 같은 고산을 해가 비출 때 골짜기는 어두움에 쌓여 있듯, 화엄경의 가르침은 소승의 근기에게는 아무 이익도 줄 수 없었고, 다음으로 갚은 골짜기를 비출 때는 골찌기인 까닭에 거기 있는 자는 높은 봉우리와 무관하여 각기 제한이 있으나, 골찌기의 좁은 시야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 햇살이 더없이 소중하듯 범부들에게는 아함경이 어울렸던 것이니, 일반 중생에게 있어서는 불교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단계여서, 교화의 면에서는 도리어 큰 성공을 거두신 시기였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똥 치우는 일은 어디까지나 똥 치우는 일이므로, 이것이 불교의 출발일 뿐 종착역이 아님도 명백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