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은정사 혜은스님은 목탁(木鐸)스님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분이다.
스님이 하시는 일은 꽤 많은 편이다. 법무교화신보사(法務敎化新報社)의 발행인겸 편집인의 직책과 사단법인 교정교화협의회 사무총장, 출소자들의 갱생을 돕기 위한 교화농장 운영과 혜은정사 주지임무 등이 스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 많은 일들이 결국 일선에서 온 몸을 던져야 하는 ‘포교’라는 대명제 아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스님의 하루는 공허하게 그저 바쁜 게 아니라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 일이기에 몸소 발벗고 뛰기 때문에 바쁘다.
스님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다. 스님이 불법과 인연이 맺어진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미신적인 발상에서 출발하였다. 사주팔자에 명(命)이 짧다는 이유로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불교가 무엇인지, 스님이 된다는 게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어른 스님의 손에 이끌려 절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식의 장래를 위해 떠나보내는 아픔까지도 감내하는 어버이의 깊은 사랑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절집에서 스님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한편으론 탁발을 통해서 고행의 참뜻을 음미하면서 성장했다. 스님은 그렇게 성장하면서 ‘불교의 어느 한 분야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발원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여느 경우와는 달리 종립학교에 가는 대신에 일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스님의 신분으로 교편생활을 한 적도 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싹텄다고 한다.
“이제는 스님들도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몸소 일어서서 나누어 주고 베풀어야 하는 시대로 탈바꿈할 때가 아닌가 해요.”
승려들도 현 시대에 발맞추어 움직여야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그래서 스님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처님의 정법을 펼치는 포교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단다.
스님이 일선에서 포교활동을 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되었다. 스님의 포교활동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의 하나는 영업용 택시에 목탁을 달아주는 일이다. 목탁스님이란 별명도 운전기사들이 붙여준 이름인데 이제 그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셈이다.
“처음에는 달리는 법당(암자)이란 뜻으로 차 안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항상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운전기사들의 고충을 생각하며 그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면서 목탁을 달아주기 시작한 일이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군요.”
이 일도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요즈음은 차 안에 염주나 목탁이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차 안에 걸려 있는 염주를 보고 있노라면 웬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한낱 형식적인 장식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가 보는 이의 마음에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또 하나 스님이 가장 애착을 갖고 헌신적으로 하시는 일이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교화시키는 작업이다. 이 일은 단순히 교도소를 찾아가 그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화신문을 발행한다거나 교화농장을 경영하는 등의 구체적인 일로 확산시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스님이 교화사업에 뜻을 두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아는 신도님 중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되는 일이 있었어요, 그 분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교도소를 찾게 되었어요. 그 분은 출감한 뒤에 아주 나쁜 상태로 변했어요. 옛날에 착했던 마음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더 난폭해지고 가정을 등한시했어요. 그때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는 교화(敎化)가 중요함을 자각하게되어 교화사업을 시작했어요.”
스님은 교도소 안에서 설법회도 자주 갖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상담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 속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이 제일 중요해요. 그들에게는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에요.”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스님이 다음으로 하는 일은 자기의 잘못을 참회시키는 일이다.
“일 년에 한번 있는 명절 때가되면 차례상을 차려 주고 제사를 지내게 해요. 강당에 모여 조상께 제사를 올리게 하면, 만약 죄를 짓지 않았다면 가족들과 정담을 나누며 지낼텐데 하는 마음에서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참회해요. 조상추모 제사를 봉행하면서 스스로 죄로 인해서 뒤바뀐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지요.”
스님은 일한 계기를 통하여 자신이 직접 피부로 절실히 느끼는 참회를 한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들에게 비록 몸은 격리되어 있지만 정신적인 위안을 위해 연예인을 초청하여 위문공연도 베풀어 주시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으신다.
이처럼 교도소 안에 있는 재소자를 위해서 하시는 일 외에 스님은 출소자들의 갱생까지 돕고 있다. 경기도 곤지암에 6,000여 평의 땅에 꿩 팔천 수를 사육하는 꿩농장을 마련했다고 한다.
“교도소에 한번 갔다 나오면 재범하는 경우도 아주 많아요. 그들이 사회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또 사회가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출소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교화농장을 열었어요. 출소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농장에서 꿩사육 기술을 배울 수 있어요. 또 그들의 자립을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여, 현재 많은 출소자들이 성실하게 일하고있어요.”
스님이 재소자를 교화시키는 일을 해온 지 올해로 13년째 접어들었다. 스님이 그 동안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주위의 부정적인 시각을 첫째로 꼽았다.
“불자들이 인간방생을 강조하면 한두 번은 잘 동참하지만 계속해서 봉사하고 후원하길 꺼려해요. 심지어 같은 스님들까지 도둑놈들한테 가서 무슨 교화가 되겠다고 들랑거리느냐고 비난 할 땐 가슴 아파요. 비록 이 일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냔 팽개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이웃을 바른길로 이끌다 보면 이 사회는 점점 밝아질 거라고 확신해요.”
이기심으로 만연한 요즘 세태이고 보면 남을 위해 자신을 위생하고 봉사하는 일이 부질없는 짓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을 가르쳤듯이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생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스님은 아직도 자신이 20대 동자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주례를 서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서 ‘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다’며 웃으신다.
출소자들이 자립하여 결혼식을 올릴 때면 으레 주례를 서 달라고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이기도 하다.
“출소자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고 사는 것을 보면 굉장히 흐뭇해요.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하구요. 가끔 살림집에 가 보면 세간이 하나 둘 늘어나는 데 나 자신이 괜히 기쁘고 즐거워요.”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을 용서받을 기회 또한 결국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지난 19869년 제 41회 세계 인권의 날에 인권협회가 주는 대통령 포상과 종단에서 포교대상 특별부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평소에 ‘불교는 아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실행으로 옮길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사신다고 한다.
발원이 있고 행(行)하는 과정이 있을 때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힘주어 말씀하신다. 그래서 한가하면 일거리를 만들어서 하는 습성이 생겼다고 할 만큼 스님은 부지런하다. 스님의 그 부지런함은 교화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988년 12월에 법무교화신보를 창간하게 했다.
중생교화와 불교포교룰 순수목적으로 하는 이 신문은 주간 단위로 발간되고 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번의 결간도 없이 이제는 15,000부나 찍어 전국의 사찰과 교도소에 보내고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재소자들이 신문을 받아 보고 고맙다는 편지를 받을 때가 가장 기뻐요. 이 작은 신문이 그들에게 마음의 등불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가끔 인사차 큰스님께 들르면 ‘그 신문 아직 문 안닫았느냐’고 물으시곤 해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도 버티는게 오늘도 스님은 신기한가봐요. 비록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만들어 외부분들께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요.”
벽에 걸려 있는 백의 관음상, 잉어(승천도), 달마상을 보니 스님은 그림 그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고 하시지만 취미삼아 그리는 그림의 도는 넘어 보였다.
스님이 즐겨하시는 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의 하나는 그저 돈만 생기면 법보시용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그동안 「마음의 등불」·「중생의 지팡이가 되고저」·「부처님 세상」 등 스님이 직접 만들어 나누어준 책만도 수만 권이 넘는다.
스님은 작은 포교원에서 포교지를 만들어 나누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하면서 큰 사찰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포교를 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거라는 지적이다. 스님께서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육신이 옴직일 수 있는 한까지는 베푸는 입장에 서는 승려가 되겠어요. 이제 불교도 양적
팽창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질적인 변에서 타 종교를 앞서가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포교일선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뒷받침해 주는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해요”라고 하신다.
스님과의 대담을 통해 이제 우리 불교도 그늘진 곳에 관심을 갖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뒤에서 말없이 후원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지리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잡은 혜은정사라는 작은 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 일은 계속될 것이다.
글/이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