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마시는 아취(雅趣)
차를 마시는 데에는 청향(淸香)한 분위기와 한적한 정취를 가져야 한다.
음차(飮茶)는 무엇 보다도 가장 고요롭고 맑은 차실(茶室)의 분위기와 평객(烹客:차를 마시는 손님)의 마음이 잘 어울러 져야한다.
적정한 기분으로 한 잔의 차를 홀로 즐기거나 지우(知友)와 청담을 즐기며 마시는 아취는 가없는 인생의 번뇌를 한 순간이나마 푸근히 가라 앉혀 주는 것이다.
근세 중국의 석학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가운데 차의 정결한 분위기가 애틋이 그려져 있으며 홀로 마시는 차를 이속(離俗)이라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산정(山頂)의 새백기운이 담담하고 이슬의 방향(芳香)이 아직 잎 끝에 남은 맑게 개인 날의 이른 새벽에 드는 차 맛은 참으로 현묘한 로적(露適)의 내용과 청순을 연상케 한다고 적고 있다.
손님의 수에 따라 둘이서 마시면 한적(閑適), 셋이나 넷이면 유쾌(愉快), 그 이상은 저속(低俗)이라 하여 많은 수의 손님이 차석(茶席)에 드는 것은 단아한 풍미를 잃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다신전(茶神傳)」에서도 많은 수의 손님을 경계하고 있다. 홀로 명월을 벗삼아 댓숲 스치는 고요한 바람소리 들으며 평상에 돗자리 깔고 희딘 흰 백자 한 잔의 신(神)이라 일컫고, 단란하게 둘이서 마시는 것을 승(勝)이라 하며, 셋이면 취(趣), 5~6인 이면 범(泛), 그 이상이면 찻잔을 돌려 가면서 그냥 베풀어 마시는 정도란 의미인 시(施)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차는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떠들며 번잡하게 마시는 향연의 성격이 아니고, 맑은 사람들이 명상하며 영혼의 저 깊은 곳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순한 사람들의 기호인 것이다.
명대(明代)의 차에 관한 기록인 다소(茶疏)에서도 시끄럽게 차를 마시거나 금방 차를 데워 소란스럽거나 더욱 강하고 짙은 차를 따로이 요구하는 것은 격심한 노동 뒤에 배를 채 우려는 노동자의 짓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차가 사치 부리고 고상하게 잘 사는 자나 권세가 있는 귀족들의 전유물은 분명 아니다. 설령 이조나 고려 시대에 사대부들이나 왕실을 비호하는 승려들이 마셨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차가 모든 민중에게 골고루 나뉘어져 마셔지게 되어 차가 지니는 맑고 고요한 성품과 높은 경지의 숨결이 젖어들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벌어진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온화하고 부드러운 차의 물로써 융화 시켜야 될 것이다.
차의 정신은 분별을 초월하는 것 이어야 한다. 못 살고 소외받은 가난한 우리 서민들이 더 많은 차를 마셔 사랑으로 적셔져야 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모처럼 싹트고 있는 차 인구의 저변 확대가 한낱 공허하게 떠돌아 사라지는 유행의 낡은 부스러기가 되기 쉽다. 차는 어떤 구호나 유행어 선전문구로써 확대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시정(市井)에 많은 차인들이 있으나, 진정 이러한 차 정신을 깊이 이해하여 음차의 깊은 뜻을 해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차의 색과 향기
차에는 다른 일반 차에서 볼 수 없는 호수의 맑은 빛으로 가라 앉은 미묘한 색이 있다. 마치 비취의 색처럼 안으로 안으로 자꾸만 들여다 보면 그 깊이에 그대로 익사하고 말 것 같은 정적의 색깔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
차의 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데, 안팎이 똑같은 것은 순향(純香)이라 하며, 설 익거나 너무 지나친 것은 청향(淸香), 그리고 골고루 기운이 감돌아 익은 것은 란향(蘭香)이며, 곡우 전(前) 차신(茶神)의 숨결이 잘 중화(中和)되어 갖추어진 것을 진향(眞香)이라 한다. 이 모든 것이 골고루 조화된 것을 여향(余香)이라 하는 데 차가 지니는 향보다 인간이 지은 시방세계의 가득한 진향이 더욱 높은 것이다.
도덕과 규범 인간 삶의 어떤 영역에서도 순연한 질서에 귀합(歸合)하여 사랑이 넘치는 계향(戒香),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는 적정한 평온에 이르는 정향(定香), 그리고 끝없는 존재의 혼돈에서 밝은 우주의 훤출한 세계, 생사 자재한 주인을 현현케 해주는 혜향(慧香), 이런 세 가지의 보배스런 향기 속에서 차의 향과 색과 맛의 조화로운 세계에 계합되는 인간성의 참다운 진인(眞人)의 길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