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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苦)에 대해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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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논단 - 아용 1983년 01월 11호
서론
인간의 공동운영 중에서 고통보다 더 보편적인 것은 없다. 고동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경험이다. 확실히 인간에게 있어서 고(苦)는 낙(樂)보다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고」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니면 고해(苦海) 속에서 투쟁하는 상태이다. 인간의 영혼에 내재된 많은 문제 가운데 인간의 실존 속으로 파고든 문제는 바로 이 고통의 문제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예 생(生) 그 자체를 「고」(Dahkasatya)로 보아, 생은 「고」요 「고」 「고」는 중생(衆生)의 현상이라고 한다. 「고」가 바로 생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토인비(Toynbee)박사가 말한대로 「고통에 대한 태도는 과학적인 신조의 근거를 이루는 태도이며, 그것은 동시에 행위와 실천의 근거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행위와 실천을 결정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이 「고」의 문제를 불교의 교리를 통해 두루 고찰해보고 그의 극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자 한다.

본론
1. 「고」의 정의
석가는 「고」란 무엇인가? 하는 「고」의 문제에 대해, 추상적 정의를 내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무엇이「고」인가를 밝혔다. 베나레스(Benares;麗野苑)에서 행한 불타 최초의 설법을 들어보면 「형제여, 고(苦)에 관한 성제(聖諸)는 이러하니 생이 고(苦)요, 싫은 것과 결합되는 것이 고(苦)요, 만족치 못한 모든 욕구가 고(苦)로다」 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고」의 현상은 복잡한 여러 요인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의 정의를 내련다고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고」 라고 할 때 C.S.wewis의 정의에 입각하여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혹 사회적이든 간에 “괴로운 경험”올 말하는 것으로 한다.

2. 불교의 인간관
불교에서는 인간은 과거의 혹(惑), 업(業; karma)에 근거한 인연(因緣) 때문에 윤회(輪廻; Samsara)되어 세상에 태어나며, 그 인간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 영원한 존재의 주체는 마음(心)이다. 그런데, 그 마음조차 흐려져 있다. 따라서 인간 현존재(現存在)는 「고」를 받는다고 말한다. 업이란 인간의 의지의 동작과 언어나 행위의 결과 및 그 세력을 총괄한 것으로 윤회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현실적 인간이 받는 「고」를 과거에서만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대승열반경(大乘涅槃經) 교진여품(橋陳如品)에는 「그대는 과거의 업이 저절로 다함으로써 괴로움도 다한다고 설하나, 나는 번뇌가 다하면 업고(業苦)도 다한다고 설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의 과거업(過去業)에 집착하는 견해를 책한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즉 업을 과거에만 중점을 둔 숙명론적인 사상으로 이해하는 자들을 숙작외도(宿作外道)라고 배척하며,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해 현실을 타개해가는 원동력으로서의 업을 본래적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 Hetu-Partyaya) 에 있어서, 인(因)은 원인의 의미로 해석되며 연(緣)은 조건의 뜻으로 얘기 된다. 한 사물이나 사건은 근본 원인과 그 원인을 돕는 조건으로 성립 형성된다. 따라서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계 제법(諸法)의 상의상존(相依相存) 관계를 말한다.*) 즉 연기설(緣起說)은 시간적 또는 공간적 인과관계에 의하여 유무(有無), 생멸(生滅)의 모든 현상이 야기됨을 말하는 것이다. *)
이상에서 얘기한 업사상(業思想)과 인연관(因緣觀)을 볼 때, 불교에서는 인간 현존재의 상태를 실존적으로 보는 듯이도 보인다.
불교는 유심론(唯心論)이며, 유식론(唯識論)이다.*) 불교는 심식(心識)의 종교요, 심식의 철학이다. 그래서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다(心爲法本)」라고 말하며,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에서도 「세간은 마음에 의하여 인도되고, 마음에 의해 어지러워지나니, 마음 하나가 모든 것을 종속시키느니라」라고 설하고 있다. 마음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사물(世俗的, 世上的)과 관념(超俗的, 出世間的) 등이 그 존재이유를 갖는다.
신체가 생기게 한 동력은 업이요, 이 신체를 부리는 것이 심식(心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섬식이 없어지면 신체는 괴멸되고 만다는 것이다. 곧 일체유심조 삼계유심(一切唯心造 三界唯心)이마. 그런데 인간은 자기주장과 맹목과 윤회에 속박되어 있고, 마음은 동요가 있어 고통이 있는 것이다. 또 공(空; Sunyata)사상에서 보더라도 공은 객관세계에 있는 실재가 아니라 주관세계의 관념을 공으로 하는 것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 Nirvana)도 어떤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