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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인연으로 만난 H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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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란 - 김청련화 1983년 11월 21호
H야!
한국 불교는 지금 혼미 속에서 역사의식과 사명의식을 망각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소리가 내 귓전을 따갑게 하는 한 해 였단다.
지난 날의 긴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현재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다가 올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지금, 재가불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는가를 빨리 파악해야 될 것 같다.
함께 비난하고 질타하는 것만이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야. 맑고 깨끗해야만 될 곳이 탐욕에 적셔진 혼탁한 분위기로 변하여 있다하여도 한순간 돌이키면 맑고 깨끗한 시선을 내리깔 수 있는 것이라고 알아야 되는 거란다.
불교는 마음 깨치는 종교요, 마음 깨치면 부처라 하지 않느냐? 인간이 종교를 위한 제물이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의 종교가 되어야 하는 것이야. 종교에 의해 어떤 경지를 터득했다면 그땐 종교를 떠나 생활인으로써 귀환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 반 백지보다는 채워진 원고지가 값지다는 걸 모르고 허무의 균만 가득히 가슴에 안고 있다니. 너도 나도 업력중생임에 틀림이 없다.

H야!
초심자인 네게 이 불가의 선배로서 어떠한 영접을 할 것인지 두려운 마음뿐이란다. 나는 언제나 도산 안창호님의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타인을 사랑하라”는 뜻을 가슴에 담고 잘아 간단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 찬물로 목욕 제계하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찾아 그 앞에 엎드려 세세생생 쌓인 업장을 녹여달라고 뜨겁게 눈물을 흘려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참선을 하며 조각난 하늘가, 외로이 낀 뭉게구름 사이로 그리운 얼굴의 그 눈빛을 지우고, 산골짜기 물소리처럼 세상사 다 재워놓고 혼자서 타고 있는 산사의 석등과 함께 밤을 지새워 보지 않고는 어떠한 비난의 소리도 해서는 아니되어.
나는 다섯 살이라는 어린 꼬마시절에 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불가와 깊은 인연이 시작이 되었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꼬마때 최초의 숙명적인 내 종교에 절대적인 그 감정은 제자리에 언제나 머물러 있단다.

H야!
산새는 산을 떠나 살 수가 없듯이 우리 인간도 인간사회를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라 하여 「사람과 사람사이」라고 하지. 그렇기에 너와 나의 관계를 맺어가며 어떠한 형태이든 관계하는 방식을 갖게 된단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만나게 되면, 인사를 주고 받고, 사랑도 함께 주고 받게 되는 거고, 물건을 주고 받기도 하며,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마음도 주고 받기도 한단다. 물질은 그 무게를 저울로 달아볼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이 주고 받는 마음만은 그 크기와 색깔은 느낌으로만 알 수가 있는 것이야. 그러므로 밥을 먹고 사는 우리 인간들은 정을 벌어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몰라.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만남은 값지고 고귀한 것이길래 너와 나의 만남은 이 세상 어느 것에 비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정한 이웃으로 만나게 된 억겁의 인연에 감사 또 감사드린다.
좋은 연은 그대로, 그리고 나쁜 연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꾸나. 어떻든 현재의 혼미한 이 아픔을 잘 이겨 나가길 바라야 될 것 같다. 현재의 이 아픔은 이 나라 불교를 위해서 하나의 필요악인 것이다. 모든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다 성불한 뒤에 우리는 그 다음에 성불하도록 하자.

H야!
도(道)에는 단정한 분위기의 도(道)가 있을 것이고, 우렁찬 도(道)도, 그리고 텅빈 도(道), 꾀죄죄한 도(道)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바른생각과 바른 눈을 가져야겠다. 타종교인의 비난의 소리를 다 정돈하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우리네 재가불자들은 서로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것이다.

H야!
지혜로움과 어진 마음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뛰어 넘도록 함께 노력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