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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廻向)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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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3년 11월 21호
계해년 초가을은 한과 눈물의 가을이었다. 올해처럼 국내외로 다투어 우울하다. 슬픈 소식들이 지면(紙面)을 가득 메운 해도 드물 것이다. KAL리 격추 만행과 버어마 아웅산 국립묘지 참배때 일어난 순국자들의 비극적 소식은 한민족에게 비감과 비분의 가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만추(晩秋)! 구르몽의 시를 소녀처럼 읽지 않더라고 늦 가을의 정취는 만산홍엽(滿山紅葉)도 가신 님들의 원한 만큼이나 붉은 산야(山野)를 보면서 이제는 내부로 어떤 무게로든지 침잠해야 할 가을! 우리 모두 거치장스러운 수식어와 횽용사를 벗어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삶의 의미를 반조해보는 가을! 뿌린대로 거둘 수 밖에 없는 생의 진실과 너무나도 명확한 인과(因果)의 법칙에 새삼스럽게 겸허해지는 가을, 이 땅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은 땅으로 떨어지고 새로 태어날 것은 위하여 빈자리를 내어 놓고 자기 몫의 삶을 또 다시 환원하는 대자연의 이법(理法)! 가을의 자연 앞에서면 누구든지 엄숙해진다. 흔히들 가을을 두고 결실의 계절이니 조락(調落)의 계절이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불교식으로 말미하면 가을은 회향(廻向)이 계절이다.
불교에 아름다운 말이 많이 있지만 이 회향이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기쁨과 보람으로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희생하는 마음과 보답하는 마음이 한데 어울어져 이루어지는 화음의 극치를 회향이라고 한다. 부어주고 부어 주어 한량없이 베풀어 주는 대비(大悲)의 정신도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우선 한량없이 베풀어 줄 수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대비의 정신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한없이 베풀어 줄 수 있는 자는 기쁨과 보람으로 베품을 받는 자는 감사와 보답으로 서로서로 은혜로운 마음이 되는 것을 회향이라고 한다. 흔히들 베풀어 주는 자는 교만하고 거만하기가 쉽고 베풀어줌을 받는 자는 아부하고 비굴해지기 쉬운 세태에서 회향하는 마음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가? 하늘의 태양이면 대지의 꽃과 잎새들은 그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보답하며 은혜로와하지 않던가! 이렇게 가을 들녘은 지금 베품의 공덕을 찬탄하는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축제기간인 것이다. 이래서 온 법계는 화장세계(華藏世界)이며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신인가? 저 부처님의 얼굴이신 늦가을의 산야(山野)를 향해 감사하는 마음, 회향하는 마음으로 합장하지 않으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