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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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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9호 - 강영옥 1983년 09월 19호
OO 스님,
유난히 무덥고도 긴 계해년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뜨락으로 나서면 신선한 바람과 함께 어디에선가 명주실 같은 풀벌레 소리가 간간히 들려옵니다. 지난 여름 저희 기억의 장(章) 속에는 그 시원하던 홍류동 계곡의 물보라와 선명한 가야산정과 은은한 해인사의 풍경소리와 함께 스님들의 송경하는 소리가 아련한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인사를 다녀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사슴처럼 눈이 맑고 무엇엔가 골똘히 사유에 젖어 있는 젊은 스님들을 뵐 때마다 한국의 불교는 결코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확신을 하곤 합니다. 어디 출가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가요? 생을 바치고 젊음을 바쳐서 구도(求道)한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영원한 것을 찾아서 깊은 사색에 잠긴 스님들의 예지에 빛나는 눈매와 입가에 번지는 조용한 미소를 생각할 때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저희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 우리의 어린 가슴에도 신심의 푸른 물결이 일렁거립니다. 사원(寺院)은 이 땅에 마지막 남은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이 거친 현대 문명에 찌들고 소외 당하여 외롭고 괴로울 때 그 청청한 솔 숲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는 우리의 마음에 한없이 맑은 강물을 흐르게 합니다. 푸르게 깎은 머리에 먹장삼을 걸치고 예불 드리는 스님들의 목소리는 세상 어떤 음악보다도 훌륭한 합창곡입니다.
나는 처음 그 소리를 들은 감동을 아직도 뛰는 내 가슴 속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에 신문에서 T.V에서 스님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뭔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저는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스님은 우물 속의 미꾸라지 같이 몇 명 뿐이고 밤잠을 줄이고 목이 아프게 공부하는 스님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세상이란 좋은 일보다 나쁜 일들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낸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으며 이것보다 훨씬 심한 기도원 사건은 흐지부지 그냥 꼬리를 감추는 것을 볼 때 저는 심히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스님들의 사건을 두둔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저는 해인사에 계시는 스님들을 믿습니다. 해인사의 스님들은 적어도 그런 스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해인사에는 부처님처럼 거룩한 방장스님과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 스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미래의 한국 불교를 지켜 나갈 큰 버팀목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도 저희들 신자들이 오히려 신심이 부족하고 발원이 지극하지 못한 탓이라고 저희들은 가슴을 치고 우리 회원들은 참회 법회를 하였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내고 서로 격려하여야 겠습니다.

OO 스님,
부질없는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이제 가을이 오겠지요. 홍제암 뒷 계곡에 3月의 꽃보다 더 붉은 단풍이 들면 호수처럼 맑게 개인 가을 하늘에 웅장하게 떠있을 가야산의 훤출한 모습을 보러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그동안도 부디 건강하시고 불은이 충만하시기를 빌며 무례한 필을 놓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