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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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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3년 09월 19호
(1)
출가자란 집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세속적인 일체의 이득과 명예를 버리고, 모든 집착과 미망을 벗어나서 훤출한 대장부가 되려는 마음을 낸 자이다. 또한 출가자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려서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을 잘 구별하면서 걸어가는 자이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몸과 입과 뜻의 세가지 행실과 생활을 밝히고, 오관의 문을 지켜서 향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한다. 만일 출가자로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성냄을 버리지 않고, 원한, 질투, 자만, 무성의 같은 과오를 감추는 것을 그만 두지 않으면, 마치 양쪽 날을 가진 칼을 옷속에 넣고 있는 것과 같이 위험한 것이다. 가사를 입고 있다고 하여 출가자가 아니며, 발우를 들고 있다고 하여 출가자가 아니며, 경을 외우고 있다고 하여 출가자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출가자의 형상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출가자란, 오직 마음을 바르게 통일하고, 지혜를 맑게 하고 번뇌를 없애고, 오로지 깨달음을 향하는, 출가 본래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면, 진정한 출가자라고 할 수 없다.

(2)
위의 글들은 출가 본연의 자세에 관한 글이고, 그러면 오늘의 출가자는 어떠한가? 지금 불교의 꼴은 어떤 꼴인가? 차마 부끄러워서 그 소상한 경위는 말 할 수 조차 없다. 자비를 가장 근본으로 하는 자들이 살상하는 것을 그 수단으로 삼고, 보시를 근본으로 하는 자들이 빼앗는 것을 능사로 삼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우리들은 그 책임소재를 서로 질책하는 것을 어찌 출가자라고 할 것인가? 마땅히 출가한 자는 거룩한 자라야 할 것이지만, 그렇게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차마 세상사람도 살상하고, 빼앗고 책임질만한 자들이 회피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않거늘! 이제 어떻게 그 입으로 자비하라, 보시하라, 성실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종교에서 믿음은 생명과 같은 것. 믿음을 새로 심지는 못할지언정 그 믿음의 종자를 끊으려고 하는 자들이 무슨 출가한 자인가? 총무원이란 싸움이나 하고 사회에 물의나 일으키는 곳일 바에는 없는 편이 백번 낫고 전 승가의 뜻을 모르고 싸움이나 하는 종회는 해산하는 편이 낫다. 권력이나 휘두르고 싸움이나 하라고 있는 총무원 종회가 아니다.
수도하는 스님들을 대신하여 출가자의 양식을 믿고 종단 일선에서 앞장 서 일하라고 그 중책을 맡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수행마저 버리고 딴 스님의 수행을 돕기 위한, 보살행으로서의 자리이지, 뽐내고 휘두르라고 준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3)
신흥사 사건은, 단순히 출가한 승가만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총무원이나 종회의 스님만이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전 불교도의 잘못이다. 한쪽에서 손가락질 하고 흉보고 욕하는 모든 이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깨끗하고 청정하다고 하는 자들, 그들도 또한, 같은 공범자라고 통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자들이고, 풍랑이 일고 배가 침몰하면, 같은 운명이 될 것을 알아야겠고, 이런 때일수록, 서로 질책하고 욕하기 전에 서로가 격려하고 같이 참회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제일 두려운 것은, 그 사건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의 내부에 있던, 신념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의기 소침하거나, 부처임의 가르침을 이번 사건과 함께 혼돈하는 불자가 있을까 그것이 가장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