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원, 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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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광우
1983년 09월 19호
사원(寺院)이 인도에서 처음 생기게 된 것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수도와 설법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믿음이 깊은 재가 불자들이 마련하여 드린 데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사원은 본래 수도와 교화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출가한 수도승들의 수행과 교화하는 사원에는 예배대상으로서의 탑이 세워지고 더 후에는 법당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사원은 불교도들의 신앙적 예배대상인 존상을 모신 불당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예배, 수도, 포교는 사원의 본질적 기능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을 원만하게 실현하지 못하는 사원은 말이 사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원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계에는 반성해야 될 점도 많고 극복해야 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우리 불자들이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사원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혹 이해한다 해도 그 본질의 기능적 구현에 철저하지 못한 것이 크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크고 작은 사원을 찾는 신자들은 스님들이 신자들의 경제력에 큰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종종 듣게된다. 또한 관광사찰을 찾는 관광객들은 관광수입원인 매표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데 비해 정작 그 절 안의 스님들은 참배객들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고 심한 경우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쌀쌀하고 거치른 언동을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불평들을 하곤 한다.
오히려 찾아 다니면서 포교를 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 불자가 아닌가? 모처럼 찾아오는 손님에게 불교적인 정서와 이해를 가지도록 하는 것은 사원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스님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업무가 아니겠는가? 그 결과로 절에 몇 십년을 다난 신자들도 사원에서의 예법에 밝지 못한 경우가 많다. 즉 절에 갈 때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오랜 불자의 생활 속에서 불상과 탑 앞에 예배도 많이 했지만 불상의 구별법이나 탑의 성격을 모르는 신자들이 대다수이다.
일주문이나 해탈문 큰 방과 법당 등이 어떻게 위치하고 있으며 각각 그 기능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원참배의 예법도 구구각색이다.
이 모든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누가 무어라 하더라도 그 일차적 책임은 우리 스님들에게 있다. 신자나 비신자를 막론하고 내객(內客)들에게는 그 사원을 관리하고 있는 스님들이 사찰의 성격과 사원에서 지켜야 할 제반 사항을 명석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사원에서 법당의 거룩한 부처님과 경건하게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님들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교의 교화와 요긴한 불법의 깨우침을 기피한다면 과연 그가 그 사원에서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사회는 여러 면에서 현대문명이 낳은 갖가지 진통을 겪고 있다. 찬란해 보이는 현대문명의 뒤안길에는 인간을 경화시키거나 소외시키는 요인들이 허다하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빈부귀천의 차이없이 모두 그 어떤 정신적 빛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 불자가 이들을 도외시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불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정신적 빛을 일깨우며 아름답고 포근한 정서가 충만하도록 해야 할 막중한 사회적 책임이 우리 불교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원은 단지 예배와 수도의 기능만으로는 그 역할을 다 했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사원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곧 사원이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전환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