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깨달음의 종교
불교는 우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무엇이 참된 이치인가를 바로 깨달고 행하는 것이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그 종교심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주입식 방법이나 삶의 조건을 지배하는 하늘과 땅을 무조건 신앙하는 태도를 꾀하지 아니하고 오로지「참」을 향해 내닫는 이지적이고도 합리적인 깨달음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진리는 종교나 부처님의 출현에 관계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리는 깨달음에 의해서만 밝혀집니다. 붇다(Buddha)의 뜻이 「깨달은 분」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요즘 의식화라는 말이 부쩍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뜻은 사람들이 삶의 주체자로서 그들의 삶을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현실과 그 현실을 변형시키는 그들 능력의 심화과정을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곧 깨달음(覺)인 것입니다.
거짓과 가설(假說), 그러고 환상의 늪에서 눈을 뜨고 진리와 아울러 내 주변의 작은 진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며 이것을 무명(無明)에서 해탈의 세계로 향하는 단하나의 밧줄인 것입니다.
2.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는 종교
불교에서는 종교가 인간생활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해탈의 세계를 이루어 가는 장본인 역시 인간 자신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명실공히 인본주의(人本主義)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의 일 모든 것이 우리의 관심에 있어야 하며 그 목적도 인간 이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자는 오직 자기일 뿐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인 인간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모든 것에 가치를 둘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도 「나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길을 가리킬 뿐 길을 가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은 자기종교를 받기만 하면 죄가 녹아지고 구원을 얻는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선택이나 그 지식이 반드시 경건한 종교인을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배타적이며 정신 이상자와도 같은 그런 되지 못한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종교가 다 똑같다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만이 지니고 있으며 만일 모든 종교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참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되는 까닭입니다.
이렇듯 부처와 인간은 동격이라는 점과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취지는 인본주의 종교로서 불교의 위치를 확실히 하고 있으며 아울러 불교가 타력보다는 자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유의할 점은 부처님에 대한 돈독한 신앙이 곧 자기정화에 직결된다는 것과 불교의 인본주의는 서구적 인본주의와는 그 궤를 근본적으로 달리한다는 점입니다.
즉 서구적 인본주의는 자연을 정복 지배하는 입장에 서있는 반면 불교의 그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색한다는 점이 크게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는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실천이 따라야 하며, 이것은 마음의 다스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정신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불교의 양대 본질은 삶의 객체가 인간인 것처럼 삶의 주체 역시 인간 자신임을 밝히고 있으며 결국 불교는 오늘날 보다 적극적인 의지와 단합으로 「지옥중생을 모두 건지지 않고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지장보잘의 서원으로 진리와 역사의 횃불이 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